NRW트로피 프리서 72.27점 1위
20개월만의 복귀전 ‘무결점 연기’
‘그랑프리 1위’ 마오와 대결 관심
20개월만의 복귀전 ‘무결점 연기’
‘그랑프리 1위’ 마오와 대결 관심
무대는 소박해도, ‘돌아온 여왕’은 더 빛났다.
200석 규모의 동네 피겨장을 연상케 하는 독일 도르트문트 아이스슈포르트첸트룸 빙상장. 객석수가 2010 밴쿠버올림픽 경기장의 100분의 1인 공간엔 수만명의 뜨거운 환호도, 보란 듯이 이겨줄 쟁쟁한 경쟁자도 없었다. 행여 자존심에 금이 가진 않을까. 걱정도 잠시. 그가 들어서자 무대는 상서로운 기운에 휩싸였다. 영화 ‘뱀파이어의 키스’ 삽입곡에 맞춰 특유의 애절한 연기가 시작되자 관객은 숨을 죽였다. 무난히 연기를 마친 여왕의 표정엔 긴장 뒤에 찾아온 안도의 기쁨이 가득했다.
20개월 만에 복귀한 김연아가 8일(한국시각)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NRW(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트로피 대회에서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시니어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기술점수(TES) 37.42점과 예술점수(PCS) 34.85점을 받아 2등을 압도적으로 따돌린 선두(총 72.27점)가 됐다. 72.27점은 김연아가 2006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뒤 국제대회에서 받은 점수 중 5위에 해당한다. 예술점수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의 33.80점보다 높다. B급 대회지만 여왕의 건재함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엷은 하늘색 의상을 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김연아는 ‘교과서 점프’를 실수 없이 소화했다.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기본점 10.10점)는 정확했고, 트리플 플립(기본점 5.30점)은 깔끔했다. 김연아는 2010 밴쿠버올림픽과 2011 세계선수권에서 선보인 플라잉 싯스핀 대신 플라잉 캐멀스핀을 넣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플라잉 캐멀스핀으로 0.75의 수행점수를 챙겼다. 더블 악셀에서는 흔들렸지만 무난하게 뛰어올랐다. 김연아는 “잠시 ‘삐끗한’ 순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총점보다는 최소 기술점수(28.00)를 넘기는 것이 목표였는데 성공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여성의 복잡한 내면을 소화해 예술점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음악이 심심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김연아의 연기력만큼은 전성기 그대로다. 김연아는 “(유혹을) 부정하면서도 빨려들어가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김연아가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고 했고, <이그재미너>는 “가장 어려운 점프 조합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점프에 성공했다”고 했다.
성공적인 복귀로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와의 대결이 관심으로 떠올랐다. 아사다는 이날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그랑프리파이널에서 196.80점(쇼트 66.96점, 프리 129.84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당장 내년 3월 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만난다. 김연아는 내년 1월 국내 대회인 전국남녀피겨종합선수권에 출전한 뒤,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선다. 이 대회에서 24위 안에 들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나갈 자격을 얻는다.
김연아는 대회를 앞두고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몸상태는 80~90% 수준”이라고 했다. 체력을 끌어올리고, 새로 시도한 부분을 다듬는다면 다시 한번 ‘여왕의 시대’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 한 피겨 국제심판은 “점프와 스피드가 좋았다. 스핀에서 흔들린 것만 보완한다면 소치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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