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윤(21·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사진 오른쪽)
평창 스페셜올림픽 개막공연 참여한 지적장애 발레리나 백지윤씨
중증 다운증후군 있는 1급 장애인
2분남짓 혼신의 연기에 관객 갈채
“남자 무용수와 듀엣 공연이 꿈”
중증 다운증후군 있는 1급 장애인
2분남짓 혼신의 연기에 관객 갈채
“남자 무용수와 듀엣 공연이 꿈”
이원국·김주원·김지영씨 등 국내 최고 무용수들의 틈바구니에 작고 여린 소녀가 보였다. 마침내 조명이 모두 꺼지고 발레 <지젤>의 막이 흐르자 소녀는 여성 솔로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혼신의 힘으로 도약을 한 뒤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회전을 해냈다. 2분 남짓 짧은 공연이 끝나자 1천여명 관객들은 엄청난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기립박수도 이어졌다.
지난 30일 밤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 겨울스페셜올림픽 개막기념 공연의 주인공은 발레리나 백지윤(21·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사진 오른쪽)씨였다. 중증 다운증후군으로 1급 지적장애인인 그는 대회 6일간 날마다 열리는 문화공연의 첫 무대 ‘발레와 마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공연 전 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부끄럽다”며 곁에 있던 엄마 품을 파고 들었다. 지능지수가 20~50에 불과하고 키도 잘 자라지 않는 다운증후군 장애인에게 무용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도전이었지만 백씨는 세상의 편견을 깨고 어엿한 발레리나가 됐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호두까기 인형>를 보고 발레리나를 동경했다는 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레학원을 보고 엄마를 졸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머니 이명희(48·왼쪽)씨는 “학원에서는 지윤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그만둘 수도 있다며 곤란해했지만 ‘재활과정의 하나로 도와달라’고 설득해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연습 공간이 마땅치않아 집 근처 경로당을 빌려 매일 밤 늦게까지 연습한 끝에 국립발레단 영재아카데미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이씨는 “지윤이가 발레를 시작한 뒤 자신감이 생기고, 사회 적응력도 빨라졌다”고 했다. 발레 공연 기사는 모두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많은 백씨는 “발레를 해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날 공연에 출연 제안을 받은 1월초, 늘 동경하던 최고 무용수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는 그는 “평소와 달리 긴장도 많이 했고, 실수할까봐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스포츠도 즐기는 그는 2010년 전국지적장애인체전에 출전해 수영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적도 있다. 간단한 영어회화도 가능한 그는 1일부터 올림픽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한다.
“남성 무용수와 함께 듀엣 공연을 해보는 게 꿈”이라는 그는 마침 대기실에 있던 선배 무용수들을 가리키며 “(이)영철 오빠보다는 (이)동훈 오빠와 공연하고 싶다”고 말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맑고 행복해보이는 웃음이었다.
평창/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