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잘할 수 있어.” “어어 왜 이리 날뛰어. 말 안 들을래!”
운동회에 출전하는 아이를 다독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니다. 말들을 달래는 기수들의 아우성이다. 4~5일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린 ‘국민생활체육 전국지구력승마대회’에 129마리의 말들이 몰렸다. 기수에 관계자에 구경꾼까지 합하면 사람만 얼추 300여명. 말을 싣고 온 마차부터, 말을 보관해 둘 마방까지 일대가 말천지다. 우리나라에 말 애호가가 이리도 많았나? 박남신 국민생활체육전국승마연합 회장은 “한해에 열리는 승마 대회 중 가장 많은 말들이 참가하는 대회”라고 알렸다.
말 지구력 대회는 기록보다는 장거리를 안정적인 페이스로 완주하는가를 겨룬다. 10㎞·20㎞(개인전, 단체전)와 40㎞(개인전) 구간에서 펼쳐진다. 1등으로 들어와도 말의 심박수가 64 이상이면 탈락이다. 심박수를 체크하는 장소에 들러 15분 안에 64 이하로 떨어뜨린 뒤 도착점을 통과해야 최종 시간으로 기록된다. 말을 혹사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작전이 필요하다. 10㎞ 단체전(4명)에 참가한 배우 윤서현씨는 “두달간 준비하며 말을 타고 달릴 구간과 걸어서 갈 구간을 나누는 등 전략을 짰다”고 했다. 출전을 위해 조치원 승마장에서 합숙까지 했다고 한다.
말과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 말들은 럭비공처럼 튄다. 경기 전 속을 안정시키기 위해 건초만 먹어야 한다. 마방에서 나가지 않으려는 말과 씨름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10㎞ 단체전에 출전한 김진걸씨의 말 ‘캣’은 말굽을 가는 동안 가만있지 않는다. 경기 전 검사를 통해 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만약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출전할 수 없다. 몰래 출전하려다 발각되는 일도 벌어진다.
먼 길을 온 만큼 ‘번외’로 출전하기도 한다. 제주에서 온 노철씨는 “제주에서 말을 배로 이동시켜야 해 운송비만 40만~50만원이 드는 등 100만원의 경비가 들었다. 준비과정이 만만찮아 대부분 말 검사에서 떨어지면 속상해한다”고 말했다. 10㎞ 단체전 1등 상금은 250만원으로, 돈이 아닌 참가 자체가 목적이다. 노철씨는 “제주 한라말의 우수성을 알리려고 매년 출전한다”고 했다.
4일 전북 부안서 열린 ‘국민생활체육회 지구력승마대회’를 앞두고 참가자 김준호씨가 말의 상태를 검사하는 마체검사를 받고 있다(오른쪽). 4일 전북 부안서 열린 ‘국민생활체육회 지구력승마대회’ 10km에 참가한 배우 윤서현(왼쪽)씨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허허벌판을 가로지르는 말들이 서부영화를 연상케 한다. 10㎞를 완주하는 데 얼추 20~30분이 걸린다. 40㎞는 1시간이 넘는다. 하나둘 도착 지점에 들어서면 심박을 떨어뜨리기 위한 천태만상이 벌어진다. 말을 진정시키려 뒷목을 끌어안기도 하고, 배 부분을 쓰다듬는 것은 기본이다. 물을 묻힌 수건으로 말의 몸을 적시기도 한다. 심박검사를 한번에 통과한 기수들의 환호성 소리가 넘친다.
최종 3위에 포함되지 못한 윤서현씨는 “그래도 뭔가를 준비해 해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 말과 하나가 되어 함께 교감했다는 게 기분 좋다”며 말 ‘하늘이’의 목을 쓰다듬었다.
부안/글·사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부안/글·사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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