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의 양동근(왼쪽)과 에스케이 김선형은 한국 최고의 포인트가드이자 라이벌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 앞에서 정장 차림을 한 둘이 농구공을 잡으려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SK 김선형-모비스 양동근
연습벌레에 승부욕 닮은꼴
“동근형 따라하며 배웠죠”
“선형이 막을 사람 없을 것”
연습벌레에 승부욕 닮은꼴
“동근형 따라하며 배웠죠”
“선형이 막을 사람 없을 것”
“다음 시즌 절대 봐주지 않겠다.”
코트 위 승부사들의 각오가 대단하다.
2012~2013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모비스와 에스케이(SK)의 대표 가드 양동근(32)과 김선형(25)이 “통합 우승”을 목표로 벌써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코트 밖에선 친형제 이상이지만, 코트 안에선 승부욕을 자극하는 라이벌이다.
김선형은 의욕이 더 넘친다.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올라가 모비스에 내리 4연패당한 아쉬움을 반드시 덜겠다는 목표다. 양동근을 뛰어넘어 최고의 가드가 되겠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는다. 자신도 있다. “최근 훈련을 시작했는데, 첫 연습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갔더니 너무 흥분되는 거예요. 포인트 가드로서 타이밍을 잘 못 잡고, 공격 루트가 단순했던 단점만 보완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요.” 빨리 다음 시즌이 됐으면 좋겠다는 동생을 바라보던 양동근은 “하긴 속공 능력이 좋으니 슛 성공률을 높이면 다음 시즌 김선형을 막을 자는 없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나에 대한 도전은 거부하겠다(웃음)”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프로 2년차와 10년차. 신구를 대표하는 두 가드의 아름다운 경쟁은 지난 시즌 화제였다. “롤모델”인 양동근을 보며 프로의 꿈을 키운 김선형이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은 스타 가드가 되어 맞대결하는 모습 자체가 또 하나의 드라마였다.
둘의 인연은 꽤 깊다. 2010년 처음 만난 뒤 2011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표팀에서 한방을 쓰며 친해진 뒤 둘도 없는 사이가 됐다. 연습벌레에 승부욕, 강한 정신력이 비슷해서 잘 통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선형에게 왠지 마음이 쓰였어요.”(양) “말 많은 것도 닮았고. 밤새 수다 떨었죠.”(김)
라이벌은 서로를 성장케 하는 힘이다. 김선형의 성장엔 양동근의 활약이 한몫했다. 김선형은 올 시즌 처음으로 포인트 가드를 맡고 양동근의 경기를 챙겨 봤다고 한다. “형 동영상을 찾아보며 따라하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풀업점프슛. 드리블하다가 갑자기 팡 떠서 슛~. 아무리 연습해도 잘 안돼 시합 때 시도는 못 해봤지만. 형에게 늘 배웠어요. 아시안게임 대표팀 때도 혼자 야간 드리블 연습하고 있으면 형이 같이 와서 슈팅도 잡아주고.”(김) 양동근은 “선형은 가드로서 속공 처리 능력이 좋다. 팀을 신바람 나게 이끄는 능력도 훌륭하다”며 부쩍 자란 동생이 대견한 듯 아빠 미소다.
둘 다 고생 한번 안 해본 것 같은 외모지만, 어려운 환경을 겪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지하방에 살았어요. 프로 오면서 빚도 갚도 집도 이번에 사드렸죠.”(양) “저도 네 식구가 목사인 아버지 월급 150만원으로 생활했어요. 월급의 70~80%가 60만~70만원인 농구 회비로 나갔어요. 빚이 점점 느는데, 부모님께 죄송했죠.”(김) 그러면서도 “코트에 서면 늘 설레고 즐거웠다”고 한다.
양동근은 더 훌륭한 가드가 되려면 멘털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드는 경기가 안 풀리면 내 탓을 하게 돼요. 그걸 잘 이겨내지 않으면 흔들리게 되죠. 선형이 그런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어요.” 김선형도 “힘든 순간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은 최고”라고 자신한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가드의 숙명은 준비하는 삶의 자세로 번진다. 양동근은 “운동선수는 내일 당장 은퇴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은퇴 뒤 지도자가 되려고 평소 감독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메모하고 책도 읽는다”고 했다. 그런 형의 모습에 동생은 또 감탄한다.
챔프전에서 진 어느날 밤 김선형은 양동근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형도 이런 기분이었어?”라고 묻는 성장통을 앓는 동생에게 형은 “모든 짐을 혼자 지려고 하지 마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우승은 모비스가 할 거야.” 동생도 지지 않았다.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죠.”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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