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수들이 성장해 3~4년 뒤 강한 팀이 됐으면 한다.”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둔 10월24일. 김진욱(53) 두산 감독은 정규리그 4위 팀이 우여곡절 끝에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감회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의 바람엔 선수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는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내보냈고 선수들은 기대에 답했다. 스타급 선수 한두명에 의존하거나 에이스급 투수들을 무리하게 등판시키는 ‘단기 전략’을 펴지 않았다. 4명의 선발투수들은 4일 이상의 휴식 뒤 마운드에 올랐다. 삼성에 비해 불펜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선발투수를 무리하게 올리지도 않았다.
15명의 타자 중 한국시리즈 7차전을 치르는 동안 7경기에 모두 나온 선수는 5명으로 삼성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원석·오재원 등 주전 내야수들의 부상 탓도 있었지만 ‘선수들에게 경험을 쌓는 기회를 주면서 팀 전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김 감독의 철학이 반영됐다.
선수들은 출전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경쟁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않았던 베테랑 유격수 손시헌은 1차전부터 4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을 터뜨리며 하위 타선을 이끌었다. 7차전에서도 홈런을 터뜨렸다. 1차전을 쉬었던 김재호는 2차전에서 3루수 이원석과 교체 투입돼 선취타점을 뽑아냈다. 이원석·오재원의 부상으로 4차전에서 3루수로 나온 허경민도 2안타를 터뜨렸다. 갑작스런 출전에도 주전 선수들과의 격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27명의 선수를 주인공으로 만들면서 “감동적인 야구를 하고 싶다”던 김 감독의 포부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정규 4위 팀의 챔피언 등극 ‘확률 0%’를 깨려 했던 김 감독은 “여기까지 와준 것만으로도 선수들에게 고맙다. 우승한 삼성 선수들 못지않게 우리 선수들이 칭찬과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박현철 허승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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