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땐 리그 불참” 반인권적 요구
박 선수 “월드컵·올림픽 때 검사”
박 선수 “월드컵·올림픽 때 검사”
한국여자축구연맹에 소속된 6개 실업팀 감독들이 서울시청 소속 박은선(27)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다음 시즌에서 계속 뛰게 하면 리그 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모아 연맹에 전달했다. 몇몇 축구 지도자들의 반인권적·반여성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자축구연맹 관계자는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근 사석에서 만난 (서울시청을 제외한) 6개 여자실업팀 감독들이 ‘박은선의 성별 여부를 확인해 달라. 그러지 않고 계속 다음 시즌에도 박은선을 그라운드에 뛰게 하면 리그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모아 연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감독들이 논의한 여러 사안 중 하나로 정리돼 내용에 포함됐으나 단장이 아닌 감독들의 의견이라 연맹에서 안건으로 다루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비상식적인 의견을 논의하고 그걸 정리해서 연맹에 전달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박은선은 지난달 14일 끝난 여자 실업축구(WK)리그에서 19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180㎝·74㎏의 우월한 체격과 실력으로 한국 여자축구 유망주로 꼽혔다. 타고난 발재간과 감각으로 성인 무대 데뷔 때부터 파괴력을 드러냈다. 일부 실업팀들은 “박은선을 상대하는 선수들의 부상이 잦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박은선은 2003년 국제축구연맹 아시아대회와 미국월드컵,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5년 동아시아대회 등에서 여자축구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2010년 5월 아시안컵대회를 앞두고는 중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이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박은선의 성별 검사를 신청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박은선이 대표팀에 뽑히지 않아 실행되진 않았다.
실업팀 감독들의 ‘문제 제기’를 전해들은 박은선은 격앙된 심정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드러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월드컵과 올림픽 때도 성별 검사를 받고 출전했다. 그때도 정말 어린 나이에 기분이 많이 안 좋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네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썼다. 또 “과거 나를 걱정해주시던 분들이 그렇게 돌변했다는 게 더 마음 아프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랑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엄마랑 우리 언니 오빠는 어떨 것 같냐”고 심정을 밝혔다. 서정호 서울시청 감독은 “박은선이 방황 끝에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다시 하면서 성적도 내고 있는데 이를 곱게 보지 못한 감독들이 도를 넘어선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서울시체육회는 7일 오전 서 감독 등이 참석해 이번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박은선의 ‘성 정체성’ 문제를 제기했다고 지목된 감독들은 “사적으로 주고받은 얘기들이 와전됐다”고 반발했다. ㄱ 감독은 “감독들이 무슨 자격으로 리그를 보이콧하겠다고 요구할 수 있나. 박은선이 뛰어난 선수인데 왜 대표팀에 뽑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들을 주고받았을 뿐, 성별 문제 같은 개인의 신상 관련 얘기들은 하지도 않았고 연맹에 요구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ㄴ 감독은 “대표팀에서 박은선을 뽑아야 한다는 얘기만 했다. 그런 문제들을 연맹이 해결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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