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스타ㅣ 21살 한라장사 최성환
30년만의 ‘대학생 한라급 우승자’
백두 거구들 꺾고 천하장사 3위도
“상대방 리듬 흔들고 그 순간 공격
삼촌들 다 이겨 천하장사 오를 것”
30년만의 ‘대학생 한라급 우승자’
백두 거구들 꺾고 천하장사 3위도
“상대방 리듬 흔들고 그 순간 공격
삼촌들 다 이겨 천하장사 오를 것”
씨름은 ‘역칠기삼’(力七技三), 70%의 힘과 30%의 기술로 승부가 나는 스포츠라고 한다. 덩치 크고 힘센 선수가 유리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달콤한 독이었다. 150㎏을 넘는 고만고만한 거구들이 지배하는 씨름판을 팬들은 외면했다.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메어꽂는 ‘대리만족’이 사라진 결과였다.
씨름계가 체중 제한이라는 처방전을 빼든 지 3년째인 올해 반짝이는 한 선수가 나타났다. 지난 추석장사대회에서 대학생으로는 1983년 이만기 이후 30년 만에 한라장사에 올랐다. 지난주 충남 서산에서 열린 2013 천하장사대회에선 백두급 거구들을 누르고 4강까지 진출해 씨름팬들을 설레게 했다. 이제 갓 스물한살을 넘긴 동아대학교 최성환(21)을 20일 부산에서 만났다.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최성환은 서글서글한 대학생이었다. 그가 150㎏ 거구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샅바를 잡으면 느낌이 온다. ‘이 사람과는 맞붙을 수 있겠다’ 아니면 ‘도저히 힘으로는 안 되겠다’ 같은. 큰 사람은 작은 사람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상대가 한발짝 움직일 때 나는 두발짝 움직이면 된다.”
183㎝·108㎏의 체격에 천하장사 2품(3위)이 된 비결로는 부족한 듯했다. “상대방이 내게 다가오게 만들어야 한다. 계획하지 않았는데 끌려오면 당황하게 되고 자기가 원하는 리듬이 아니다 보니 한발짝씩 늦게 된다. 그 순간을 이용해야 한다. 백두급 선수들은 ‘작은 선수에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 점도 이용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씨름을 시작한 최성환은 “나보다 작은 애들한테 계속 넘어지는데 화가 나서 이길 때까지 하겠다고 덤벼들었다. 그래서 이기고 나면 또 다른 선수한테 계속 졌다. 그게 반복되다 여기까지 왔다”고 웃었다. 강한 승부욕 덕분인지 그는 중학생이 되면서 이미 씨름판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선수가 됐다.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 대학교 때까지 줄곧 한라급 최고 선수로 군림했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대학부 통산 20관왕에 올랐다.
그래서 씨름판에선 최성환에게 ‘제2의 이만기’라고 부르며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추석장사대회를 “작정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그동안 늘 예선에서 기태 삼촌, 주용이 삼촌에게 졌다. 예선에서 늘 그들을 만났는데, 그래도 한라급 최강자들에게 졌기 때문에 나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보다 열살 가까이 많은 한라급 맞수 김기태(33), 이주용(30)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천하장사라는 꿈에 도전하는 이상 그는 이만기(50) 인제대학교 교수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수는 1983년 열린 1회 천하장사대회에서 한라급 선수로 나가 백두급 선수들을 물리치고 초대 천하장사에 올랐다. 이후 이 교수는 백두급으로 체급을 올렸고 지금까지 천하장사에 오른 유일한 한라급 선수로 남아 있다. 지난 일요일 최성환이 거둔 성적(2품)은 대한씨름협회가 천하장사대회를 주최한 2008년 이후 한라급 선수가 거둔 최고 성적이다.
이만기 교수는 “체력과 중심 이동이 좋고 기술의 폭도 넓다”고 최성환을 평가하면서 “상대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아직 그 점이 부족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유도하는 현재 규정상 한라급 선수가 천하장사에 오르는 게 쉽지는 않다. 장기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극복하려면 근력과 체력을 더 키우고 몸도 더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3㎝만 더 컸으면 좋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최성환도 이 대목에선 진지해졌다. “10㎏만 더 체중을 늘리면 쉽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한라급에서 좀더 겨뤄본 뒤에 (체급 상향을) 결정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라급에서도 정상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올해 열린 네번의 지역장사대회 한라장사는 최성환을 비롯해 이주용·손충희·김보경 4명이 골고루 나눠 가졌다. 최성환도 “실수하는 순간 끝이다. 빈틈은 용납이 안 된다. 백두급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털어놨다.
어느덧 캠퍼스에서 “최성환 오빠다”라고 알아보는 후배들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만족할 수 없다”는 최성환이다. “말 한마디 잘못 하면 ‘씨름만 잘하고 인간이 안된 놈’으로 찍힐까봐 몸조심한다”고 낮추는 듯싶더니 “알아보시는 분들 많은데 아직 부족하다.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해지기 전까진 절대 만족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넉살 좋게 웃었다. “제2의 이만기라는 수식어를 넘어 제 후배들이 ‘제2의 최성환’으로 불릴 수 있을 때까지 천하장사든 한라장사든 여러번 할 테니 지켜봐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부산/글·사진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최성환이 20일 동아대 교정에서 아름드리나무를 뽑으려는 듯 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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