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오지영(26도로공사) 김민욱(32·대한항공). 사진 각 구단 제공
대한항공 김민욱·도로공사 오지영
남녀배구 서브 전문 선수로 활약
김, 삼성화재전 연패 끊을 때 기여
“들락날락하며 오기와 책임감 생겨”
오, 5연속 에이스 기록 세우기도
“툭 친다는 느낌으로 부담 떨치죠”
남녀배구 서브 전문 선수로 활약
김, 삼성화재전 연패 끊을 때 기여
“들락날락하며 오기와 책임감 생겨”
오, 5연속 에이스 기록 세우기도
“툭 친다는 느낌으로 부담 떨치죠”
인터뷰 요청이 조심스러웠다. 선수라면 누구나 붙박이 주전을 꿈꾸기 때문이다. ‘원 포인트 서버’로 이름을 알리는 게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짐작을 했다. 선입견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서브만 치다 은퇴할래?’라는 얘길 들을 때 가장 자존심이 상한다. 나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서브만 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김민욱(32·오른쪽 사진·대한항공)은 프로배구의 대표적인 원 포인트 서버다. 경기 중후반 상대적으로 서브가 약한 선수 대신 들어가 서브를 넣고 서브권이 상대팀에 넘어가면 다시 교체된다. 27일 경기도 용인시 대한항공 체육관에서 그를 만났다.
배구에선 한번 교체돼 나갔다 벤치에 들어온 선수는 그 세트엔 다시 나갈 수 없다. 서브에 주어진 시간은 8초. 짧은 시간 동안 서브만으로 팀에 기여하고 자신의 가치도 증명해야 한다. 김민욱의 고민은 그 지점에 있다. “나보다 서브를 잘 넣는 선수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다만 난 그들과 달리 서브 하나로 모든 걸 보여줘야 하니까. 초기엔 ‘범실만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으로 했는데 계속 원 포인트로 나가다 보니 오기도 생기면서 내 ‘책임’이 뭔지 생각하게 됐다.” 2006년 대한항공에 입단한 김민욱은 2011년 상무에서 전역한 뒤부터 원 포인트 서버로 활약중이다.
같은 날 성남에서 만난 오지영(26·왼쪽·도로공사)도 “올 시즌 들어 생각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러다 끝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언제까지 서브만 때려야 하나 하는 생각들….” 물론 오지영은 김민욱과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레프트였던 그는 2006년 도로공사에 입단한 뒤 리베로로 전향했다. 도로공사엔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이 버티고 있어 오지영은 주로 센터 공격수와 교체 투입된다. 수비가 좋기 때문에 서브권이 상대에게 넘어가도 전위로 나가기 전까지 후위에서 수비를 한다. “서브 범실을 하더라도 수비로 만회하면 되니까 부담이 적다.” 그는 서브 (잘) 넣는 리베로란 뜻의 ‘서베로’ 국내 1호다.
■ 서브의 최우선 덕목 ‘무아지경’ 대부분의 선수들은 정지 자세에서 공을 띄운 뒤 서브를 넣지만 왼손잡이 김민욱은 앞으로 뛰어나가면서 토스를 한 뒤 공을 때린다. 마치 엔드라인에서 하는 후위공격 같다. “리듬만 잘 맞추면 실수가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때 한창 잘 들어갈 땐 서브 범실이 거의 없었다.”
지난 12월25일 대전 삼성화재와의 올 시즌 3차전은 김민욱의 가치가 돋보인 날이었다. 2세트 17-17에서 코트에 들어간 김민욱은 날카로운 서브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그의 서브 에이스를 포함해 연이어 2점을 뽑은 대한항공은 2세트를 잡아냈고 21개월 만에 삼성화재를 꺾었다.
오지영의 가치는 기록이 증명한다. 지난해 2월27일 인천 흥국생명전에서 2세트 18-8로 앞선 상황에서 5개의 서브를 상대 코트에 꽂아넣었다. 5연속 서브 에이스는 지금까지 남녀 통틀어 최다 기록이다. 2009~2010 시즌 올스타전에서 그가 세운 시속 94㎞ 서브는 국내 여자 선수가 세운 최고 속도다. 올 시즌 원 포인트 서버로만 나가 16개의 서브 에이스를 하는 동안 범실은 8개에 불과했다. 같은 팀 외국인 선수 니콜이 21개 에이스를 하면서 52개의 범실을 한 것과 비교하면 오지영의 ‘영양가’를 알 수 있다.
서브에 임하는 둘의 공통점은 “생각이 많으면 실패한다”는 철학이다. 김민욱은 “관중이 안 보여야 한다. 상대 수비수 3명과 공만 바라보고 때려야 한다”고 말한다. 오지영은 “어떻게든 상대 수비를 흔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내는 게 가장 어렵다. ‘그냥 툭 치고 나온다’는 기분으로 친다”고 말했다.
■ 미워할 수 없는 내 밥벌이 가족은 김민욱에게 고통과 의욕을 함께 준다. “서브 못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와이프”라며 웃는다. 그를 코트에 나서게 하는 힘은 “가족과 선수로서의 자존심”이다. “닭장(배구 선수들은 3m×3m 크기의 대기선수 구역을 여러 선수들이 몰려 있다며 그렇게 부른다)에 있는 10명 넘는 선수 중 경기 나서는 사람은 한두명에 불과하다. ‘들락날락하면서 내가 먹고사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내 역할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어느덧 프로 8년차인 오지영은 “곽유화를 비롯한 여러 후배들이 나를 보고 많이 배운다고 하니까 뿌듯하다. 나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리베로인 탓에 자기 서브를 받는 상대 수비수의 마음도 잘 안다. “상대팀 한 친한 후배가 ‘언니 저한테 서브하지 마세요’라며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러면 ‘얘가 불안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경기에 나가 그 선수에게 서브를 넣었다. “나 먹고살기 바쁜데 봐줄 수는 없다”는 게 오지영의 ‘변명’이다.
동병상련의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김민욱은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부담을 느끼고 있을 다른 팀 후배들이 대단해 보인다. 잘하기까지 하니 같은 선수가 봐도 멋있다”며 오지영의 이름을 거론했다. 이 얘기를 들은 오지영은 “김민욱 오빠는 서브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니까 나보다 더 힘들 것 같다”고 되받았다. “나중에 시간 나면 밥이나 한번 먹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인터뷰를 하게 되면 같이 모여서 하자”며 웃었다.
용인 성남/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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