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레오는 과묵하다. 팀 공격의 절반 이상은 언제나 레오의 몫. 그래서 팀 승리의 절반 이상도 언제나 그 덕분이지만 좀처럼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진 않는다. 과묵한 성격 탓에 늘 단답형 대답만 하는 레오는 기자회견장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대신 코트에서 레오는 온몸으로 말한다. 경기 전 자신의 이름이 소개되면 골을 넣은 축구선수처럼 튕기듯 뛰어나가 동료들 손바닥을 일일이 부딪친다. 경기 중엔 끝없이 중얼거리고 실수한 동료를 찾아가 위로한다. 리시브나 토스가 나쁘더라도 얼굴을 찡그리는 일은 없다. “매일같이 ‘내가 더 해야지’라고만 한다”는 게 레오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삼성화재 통역 담당 김준엽씨의 말이다.
삼성화재가 9일 2013~2014 프로배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기까지 레오는 올 시즌 1716번의 스파이크를 휘둘렀다. 팀 공격의 62.35%를 혼자서 한 셈이다. 경기당 59번의 스파이크를 때려 이 중 58.57%를 성공했다. 지난 시즌(1280번)보다 30% 이상 늘었지만 성공률은 1%포인트 남짓 감소하는 데 그쳤다. 남자부 7개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공격 횟수이자 가장 높은 공격 성공률이다.
라이벌 현대캐피탈의 안방에서 정규리그 3연패를 달성했기에 레오의 기쁨은 더 컸다. 이날 레오는 혼자 49득점을 올리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레오는 “정규리그 우승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그만큼 노력해서 달성한 우승이라 더 만족스럽다”며 평소와 달리 제법 긴 말들을 쏟아냈다. 레오는 “지난 시즌을 한번 치러봤다는 게 큰 도움이 됐다”며 “다른 외국인 선수들보다 내가 나은 점은 한국 배구 2년차라서 노련미가 있다는 것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도 리그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레오를 꼽았다. 신 감독은 “레오나 나나 서로 많은 얘기를 하진 않지만 서로 기대는 게 있다. 레오는 나이에 비해 심지가 굳은 친구”라며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레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날 결정적인 블로킹 4개로 승리에 기여한 주장 고희진은 “늘 레오는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나를 믿고 한번 해보자’는 말을 한다. 레오를 중심으로 선수들이 똘똘 뭉친 게 우승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날 승리로 23승6패(승점 65)가 된 삼성화재는 남은 마지막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짓고 챔피언결정전(5판3승)에 직행했다. 21승8패(승점 61) 현대캐피탈은 2위가 돼 3위 팀과 플레이오프(3판2승)를 치른다. 올 시즌 김호철 감독과 특급 선수 아가메즈를 영입해 정상 탈환을 노렸던 현대캐피탈은 숙적 삼성의 우승을 안방에서 지켜봤다. 김 감독은 “우선 플레이오프 준비부터 하겠다. 2주 시간이 있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천안/박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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