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때려야 성적 좋다’…폭력 불감증 치유못한 스포츠계

등록 2014-04-20 19:24수정 2014-04-20 21:37

박종환 감독 선수 폭행 계기로
성과주의 반인권문화 다시 도마에
신체폭력 외에 욕설·모욕도 잦아

“학생선수 때부터 위계폭력 익숙
관성 된 폭력 끊고 소통 우선을”
“강압적으로 감독하던 시절은 지났다.”

지난 2월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장에서 박종환(76) 감독은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박 감독이 지난해 12월 시민구단으로 새로 태어난 프로축구 성남FC의 사령탑을 맡았을 때 축구계 인사들이 던진 의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1983년 20살 이하 멕시코월드컵 4강에서 보듯 박 감독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박 감독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훈련 방식이 지금의 프로 스포츠에선 쉽게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란 걱정이었다. 16일 연습경기에서 선수를 폭행한 사실(<한겨레> 4월18일치 28면)이 드러나면서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됐다. 박 감독의 ‘과거 단절’ 선언은 100일을 넘기지 못했다.

4대 프로 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에서 감독에 의한 폭행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스포츠계의 폭력이 프로나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여전히 진행형이란 현실을 방증한다. 신체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욕설이나 모욕적인 발언 등은 카메라 앞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월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선수에게 “입에 테이프를 붙여라”고 했던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체육교육학과)는 “최고들만 모인 공간에서 그런 모욕적인 언행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은 그보다 낮은 무대 또는 어린 선수들이 모인 공간에선 더욱 심각하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경악하는 이유도 그런 점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의 지적처럼 사태의 원인이자 모태는 학교체육 현장에 있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성적 지상주의와 그로 인한 인권 감수성 부족이 누적돼 프로 스포츠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학교에서부터 위계 문화, 폭력적 문화를 내면화한 채 프로로 진출한다. 테이프 사태 이후 ‘애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농구팬들은 나쁘게 볼 수도 있겠다’던 유 감독의 말이 이런 인식을 반영한다. 선수들이나 지도자 모두 민주적인 감수성은 고사하고 인간적 배려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이런 암묵적인 ‘동의’는 감독이나 선배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배경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전국 중·고교 학생선수 113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98명(78.8%)이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09년 발표된 논문 ‘권력관계의 관점에서 본 스포츠 폭력’(2009. 한승백 등 5명)은 “감독이나 선배의 위치에서 선수나 후배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 폭력의 원인이다. 왜곡된 믿음 위에 위계적 서열이 전제된 폭력이 일상적이고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고 지적했다. ‘성적 지상주의-왜곡된 권력 관계 발생-폭력의 일상화’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학과)도 “선수나 감독 모두에게 폭력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기에 그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절대권력을 지닌 감독이 ‘그래도 성과를 내지 않았느냐’는 전근대적인 발상 아래 개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은 감독의 선수 폭행 사건 이후 2012년 신임 위성우 감독을 임명하면서 이런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전례가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성적에 급급하지 않고 선수들과 말이 잘 통하고 인간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성적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성남 구단은 21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박 감독 징계와 이번 사태의 후속 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성남 서포터들은 20일에도 “사건의 심각성에 걸맞은 조처가 필요하다”며 엄중한 대책을 요구했다.

박현철 허승 기자 fkcoo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