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홍은정
8년 만에 아시안게임서 도마로 금메달 석권
8년 만에 아시안게임서 도마로 금메달 석권
홍은정(25)을 만나기 위해 8년 만에 다시 뛰어야 했다. 8년 전인 2006년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 때 그는 열일곱이었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살 터울의 언니 홍수정을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가 딴 금메달을 받아들고 “내가 딴 것보다 기쁘다”고 하던 기특한 동생이었다. 기계체조 도마에 나란히 나간 자매는 언니가 금메달, 동생이 동메달을 땄다.
도마를 뛰어넘는 자매의 몸은 새처럼 가벼웠지만 입은 무거웠다. 금메달을 딴 언니는 시상식 뒤 공식 기자회견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말 한마디 건네면 수줍은 듯 웃으며 달아나버렸다. 언니보다 붙임성이 좋은 동생에게서 관중석에서나마 단답형의 짧은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부끄러운지 말을 하면서도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함께 경기를 뛴 한국 선수들에게 들으니 “선수들과는 얘기도 잘한다”고 했다. 그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숨바꼭질하듯 달아나는 자매를 붙잡기 위해 체육관 주변을 뛰고 또 뛰었다.
8년 만에 아시안게임 무대에 등장한 홍은정은 훌쩍 자라 있었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도마에서 금메달을 따 체조요정을 넘어 북한의 체조영웅이 됐다. 2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도마에 나간 홍은정은 두 차례 연기로 평균 15.349점을 받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체육관에서의 ‘위상’도 달라졌다. 경기를 마친 다른 나라 선수들이 먼저 그에게 다가와 사진을 함께 찍기를 부탁했다. 어느덧 북한 여자 체조 맏얻니가 돼 경기 중엔 후배들에게 조언도 하고 자신의 연기를 마친 뒤엔 코치와 여유롭게 얘기도 나누고 있었다.
동생보다 2년 먼저 체조를 시작했던 언니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제대회에서 나이를 허위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 2년 간 출전정지를 당했다. 이번 대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 아시안게임에 나온 홍은정의 소감이 궁금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엔 다음 경기에 출전한다며 기자회견장에 오지 않았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여자 이단평행봉에선 어깨 부상을 이유로 기권을 했다.
한 시간 뒤 감독과 함께 공동취재구역에 등장하는가 싶더니 총총 걸음으로 기자들을 지나쳐갔다. “도핑(테스트)하러 가야한다”고 했다. 좁은 체육관 복도에서 홍은정과 코치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그 뒤를 기자들이 마치 연예인을 쫓는 팬클럽 회원들처럼 따라붙는 광경이 벌어졌다. 북한에서 온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소감이 어떠냐?” “언니가 무슨 얘길 해주더냐?”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수줍게 웃기만 할뿐 입을 열지 않았다. 8년이 지났지만 무거운 입만큼은 그대로였다. 마지못한듯 내뱉은 한마디는 “원수님(김정은 위원장)이 기뻐하실 것 같아 좋다”는 ‘싱거운’ 소감이었다.
이번에도 다시는 못볼 것 같았다. 북한 선수들을 태울 버스와 함께 그를 기다렸다. 북한팀 사람에게 물으니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도핑테스트 시간이 올래 걸린다”고 했다. 그는 “은정이가 원래 말수가 없다”고 했다.
밤 11시30분, “도핑하러 간다”며 달아난 지 1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홍은정은 체육관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언니가 대회 나가기 전 무슨 얘길 해주더냐”고 물으니 “무조건 인천 가서 금메달 따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좀전에 얘기 좀 하지 그랬냐”고 하니 다시 ‘침묵모드’가 됐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꽃다발을 든 채 8년 전처럼 앞만 보며 웃기만 했다.
인천/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체조선수 홍은정이 경기를 마치고 마무리 동작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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