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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조여왕의 무거운 입

등록 2014-09-25 20:36수정 2014-09-25 22:19

홍은정(사진 가운데). 연합뉴스
홍은정(사진 가운데). 연합뉴스
미추홀에서
홍은정(25·사진 가운데)을 만나기 위해 8년 만에 다시 뛰어야 했다. 8년 전인 2006년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 때 그는 열일곱이었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살 터울의 언니 홍수정을 졸졸 따라다녔다. 언니가 딴 금메달을 받아들고 “내가 딴 것보다 기쁘다”고 하던 기특한 동생이었다. 도마 종목에 나란히 출전한 자매는 언니가 금메달, 동생이 동메달을 땄다.

경기장에서 자매의 몸은 새처럼 가벼웠지만 입은 무거웠다. 금메달을 딴 언니는 시상식 뒤 공식 기자회견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언니보다 붙임성이 좋은 동생에게서 관중석에서나마 단답형의 짧은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부끄러운지 말을 하면서도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홍은정은 훌쩍 자라 있었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도마에서 금메달을 따 북한의 체조영웅이 됐다. 24일 열린 도마 종목에서 홍은정은 두 차례 연기로 평균 15.349점을 받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체육관에서의 위상도 달라졌다. 경기를 마친 다른 나라 선수들이 먼저 그에게 다가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어느덧 북한 여자 체조팀의 맏얻니가 돼 후배들에게 조언도 하고 코치와 여유롭게 얘기도 나눴다. 그의 언니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제대회에서 나이를 허위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 2년간 출전정지를 당했다. 이번 대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홍은정은 시상식이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 뒤 감독과 함께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등장하는가 싶더니 총총걸음으로 기자들을 지나쳐 갔다. “도핑(테스트)하러 가야 한다”는 말만 남겼다. 기자들은 마치 연예인을 뒤쫓는 팬클럽 회원들처럼 그를 따라붙었다. 북한에서 온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소감이 어떠냐?” “언니가 무슨 얘길 해주더냐?”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수줍게 웃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8년이 지났지만 무거운 입만큼은 그대로였다. 마지못해 내뱉은 한마디는 “원수님(김정은 위원장)이 기뻐하실 것 같아 좋다”는 것이었다. 북한팀 관계자는 “은정이가 원래 말수가 없다”고 했다.

“도핑하러 간다”며 달아난 지 1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홍은정은 체육관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언니가 대회 나가기 전 무슨 얘길 해주더냐”고 물으니 “무조건 인천 가서 금메달 따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 모드’가 됐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꽃다발을 든 채 8년 전처럼 앞만 보며 웃기만 했다.

인천/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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