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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각양각색 인생들 모여 난생처음 ‘빨랫방망이’를 휘둘렀다

등록 2014-10-03 19:50수정 2014-10-05 22:11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여자 크리켓 대표팀 도전기
아름다운 오합지졸
한국 최초의 여자 크리켓 대표팀
현수막 모집에서 아시안게임까지
인천 아시안게임이 4일 폐막한다. 경기장 곳곳에서 15일간 펼쳐진 ‘땀과 열정의 콘서트’는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경기 결과가 어떻든 참가한 모든 선수들의 도전은 아름답다. 한국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크리켓은 비인기 종목 정도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영역’의 스포츠였다. 선수들은 그러나 도전을 선택했다. 1년 전 크리켓 배트를 처음 구경(?)했고, 6개월 전 배트를 들었다. 다시 6개월 뒤 이들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맞섰다. 피땀을 흘린 훈련의 결과였다. 예선 1, 2차전에서 중국과 홍콩에 잇따라 패하며 경기를 마쳤지만 짧은 기간에 키운 놀라운 실력에 크리켓 관계자들은 놀랐다. “다시 경기장에서 뛰고 싶어요.” <한겨레>와 만난 크리켓팀 여자 선수들이 말했다. 기회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스포츠 정신이란 무엇일까? 9월29일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 대기실에서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이 밝게 웃으며 뛰고 있다. 왼쪽부터 안나(27), 송승민(19), 정아람(23), 이진아(21) 선수.

▶ 아시안게임 비인기종목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핸드볼? 역도? 육상? 그러나 비인기종목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런 종목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크리켓 종목입니다. 이번에 처음 아시안게임에 도전한 한국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을 만나봤습니다. 이분들도 크리켓을 불과 1년 전부터 접했다고 하는데요, 무엇이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걸까요?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패만 당한 채 경기를 끝냈지만 ‘크리켓의 ㅋ’도 모르던 이들이 6개월 훈련 끝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펼친 것 자체만으로도 격려받을 만하다. 선수들이 9월29일 오후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감독 나시르 칸, 정아람, 송승민, 안나, 이진아 선수. 개인 일정 탓에 대표팀 13명 모두가 이날 다 모이지는 못했다. 지면 상단의 작은 사진은 인천크리켓협회가 지난해 내건 ‘국가 대표 여자 크리켓팀 지망생’ 모집 펼침막.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패만 당한 채 경기를 끝냈지만 ‘크리켓의 ㅋ’도 모르던 이들이 6개월 훈련 끝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펼친 것 자체만으로도 격려받을 만하다. 선수들이 9월29일 오후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감독 나시르 칸, 정아람, 송승민, 안나, 이진아 선수. 개인 일정 탓에 대표팀 13명 모두가 이날 다 모이지는 못했다. 지면 상단의 작은 사진은 인천크리켓협회가 지난해 내건 ‘국가 대표 여자 크리켓팀 지망생’ 모집 펼침막.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각양각색 인생들 모여 난생처음 빨랫방망이를 휘둘렀다

40대 중반의 전순명(46)씨는 지난해 10월 수업을 들으러 인천대학교 교정을 걷고 있었다. 교정 한편에 걸려 있던 펼침막 하나가 그의 눈에 밟혔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할 여자 크리켓 국가대표 선수 지망생 모집.’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펼침막 문구를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때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다 접었다. 20대 초반에 결혼했다. 지금까지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30대가 되었다.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가는 게 아쉬웠다. 생활체육 강사 일을 시작하고 뒤늦게 학교도 다닌다. 하지만 가슴 한켠 뭔지 모를 허전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펼침막에 적혀 있던 전화번호를 적었다.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다. “저…. 나이가 좀 많아도 괜찮나요?” 전씨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 남성은 “괜찮으니까 일단 한번 만납시다”라고 답했다. ‘대체 크리켓이 어떤 운동이기에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걸까.’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십대 소녀로 돌아간 듯 전순명씨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멍들고 벗겨진 손가락에 묘한 희열

안나(27)씨는 지난해 말 규모 있는 중견 기업에 취업을 했다. 한때 소프트볼 국가대표 선수였지만 큰 빛은 보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2011년 일본 후지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을 전공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려던 지난해 10월. 그는 전국체전에 출전한 친구를 응원하러 갔다가 여자 크리켓팀 선수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경기장에서 보았다. 전화를 걸었다. “저도 하고 싶어요. 제가 너무 늦게 전화했나요?” “전화 걸어온 사람이 안나씨가 처음입니다. 한번 오세요.” 평일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 나와 크리켓을 연습하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골프 선수 출신 오인영(25·주장)씨, 체대 입학 실패 뒤 방황한 적 있는 십대 소녀 송승민(19)씨, 스포츠 복지학을 전공하는 학생 이진아(21)씨, 다친 무릎 때문에 뭘 해도 실패하던 전직 태권도 사범 정아람(23)씨 등 각양각색의 삶을 살고 있던 선수들이 크리켓을 위해 모여들었다. ‘오합지졸 외인구단’의 시작이었다.

여자 크리켓팀의 도전은 아시안게임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국내에서 여자 크리켓팀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아마추어 남자팀이 몇개 있었을 뿐이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극히 낯선 스포츠가 크리켓이다.

여자 크리켓팀은 아시안게임에서 2전 전패를 당해 8강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 과정을 살펴보면, 스포츠가 승패 결과에 상관없이 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지 느껴진다. 무모한 도전, 초라한 시작, 치열한 연습, 끝없는 부상, 그리고 아름다운 결과. 대한민국 최초 여자 크리켓팀이 지난 여섯달 동안 보여준 스포츠 정신은 인상 깊었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것은 관용구가 아니라, 어쩌면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본질일지 모른다.

9월22일 홍콩전을 끝으로 휴식에 들어간 국가대표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을 만나 ‘비인기 종목의 아시안게임 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전순명 선수는 1일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에서 기자를 만났다. 오른손 검지 끝에 피멍 자국이 선명했다. “공이 스치고만 가도 정말 아파요. 그래도 맨손으로 잡아야 하거든요. 수비하면서 공 잡다가 생긴 멍인데 잘 안 없어지네요.” 전순명 선수가 웃으며 말했다.

크리켓은 야구와 비슷한 경기이지만 수비수가 글러브를 끼지 않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딱딱한 공을 맨손으로 잡아야 한다. 공을 잘 받는 요령을 익히기까지 선수들의 손은 남아나질 못한다.

네팔 전지훈련 때 연습게임 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세미(왼쪽), 전순명 선수(오른쪽). 인천크리켓협회 제공
네팔 전지훈련 때 연습게임 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세미(왼쪽), 전순명 선수(오른쪽). 인천크리켓협회 제공
전순명 선수가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진 손바닥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네팔 전지훈련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을 받는데 어느 순간 공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퍽 하고 뭔가 떨어지는데 눈에 맞았어요. 전지훈련 끝날 때까지 판다처럼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지요.”

그는 여자 크리켓 대표팀 13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다. 아시안게임 참가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령자다. 40대 중반까지 두 아이의 엄마로 살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크리켓에 뛰어들었다. 나이 때문에 안 받아줄 것 같았던 대한크리켓협회는 그에게 훈련의 기회를 주었다.

멍들고 벗겨지고 딱딱해져가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어떤 낯선 운동이든 막상 도전해보면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크리켓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타자가 쳐올린 공을 바로 잡아 아웃시켰을 때의 쾌감이 정말 좋아요.”

3월16일 국가대표팀 선발시험에 응시했지만 전순명 선수는 떨어졌다. 17명의 훈련생 중 13명이 합격하는데 그는 14등을 했다. 선발시험은 지구력 테스트를 위한 왕복달리기, 수비능력 평가, 배팅 테스트, 최종 면접 등으로 진행됐다. 전순명 선수가 자신보다 스무살 이상 젊은 친구들의 체력을 따라가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러나 합격자 한명이 중도에 이탈했고 전 선수는 기적적으로 뒤늦게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아줌마의 끈기’가 빛을 발했다.

크리켓과의 첫 만남은 선수들에게 설렘과 당혹감이 범벅 된 알수 없는 감정을 선사했다.

“학교 지도교수님이 저더러 크리켓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하시는데 제가 크리켓이 뭔지 알아야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는데 베컴(축구선수)이 위킷을 축구공으로 맞히는 광고영상만 검색되더라고요.”(송승민 선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에서 지하 세계로 들어간 앨리스는 여왕과 크리켓 경기를 한다. 선수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크리켓에 대한 정보는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전부였다.

선수들이 동화 속에서나 보았던 운동경기를 배워 국가 대표 선수로 뛰게 되기까지에는 인천시의 뒷받침이 밑바탕에 있었다.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물량공세의 향연이었다. 인천시는 재정 형편이 좋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 절치부심 끝에 아시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대회를 치르자는 전략을 꾸렸다.

광저우 대회 때 유일하게
한국이 참여하지 못한 종목
선수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대학 캠퍼스와 경기장에
선수 모집 현수막을 걸다

고교 때 배구선수의 꿈을
키우다 접은 46살 전순명
평범한 회사원이던 안나
체대입학 실패한 송승민
골프선수 출신의 오인영

최고참 전순명에게 다들 “엄마”

한국도 아시아인들이 즐겨 하는 운동을 배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광저우 대회 때 유일하게 한국이 참여하지 못한 종목이 크리켓이었다. 인도 등 남아시아권에서는 축구보다 훨씬 인기있는 스포츠이지만 한국에서는 크리켓 인구가 거의 없어 참여할 선수를 찾지 못한 탓이었다.

김남기(49·전 인천시 아시안경기대회 지원본부 정책조정관) 인천크리켓협회 전무이사가 여자 크리켓팀 출범의 산파 구실을 맡았다.

“제가 놀란 게,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과 귀화자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해오던 크리켓 경기를 여기서도 하고 있더라고요. 크리켓 운동장도 제대로 없는데 말이죠.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 대학생 일부가 팀을 구성해 매년 리그전도 하고 있어요. 남자 아마추어팀은 13개나 있습니다. 다양한 아시아 문화가 국내에 꽃을 피우려면 크리켓 전용 경기장 하나쯤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45억의 꿈 하나되는 아시아’가 아시안게임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인천시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 크리켓 변방국인 한국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고 인천시도 예산을 보탰다. 국가대표 크리켓팀을 꾸릴 예산을 확보한 인천시는 파키스탄 출신 귀화자인 나시르 칸(45)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나시르 칸은 20년 전 파키스탄에서 크리켓 선수로 뛰었고 한국에서도 크리켓 확산에 노력해왔다.

예산과 감독을 마련한 인천시는 크리켓팀 선수를 사방팔방 찾아다녔다. 체육대학이 있는 대학의 캠퍼스와 전국체전이 열리는 경기장에 선수 모집 펼침막을 걸었다. 체육대학 교수들에게도 제자 추천을 의뢰했다. 지난해 10월 말이 되자 연습을 할 수 있는 규모로 간신히 지원자들을 모았다.

팀에 합류하겠다고 해서 무조건 국가대표가 되는 건 아니었다. 훈련을 거치고도 출전할 실력이 되지 않으면 최종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덤빈 것이었지만 역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공을 던지는 방법도 생소하고, ‘위킷’이라 불리는 이상한 나무 막대 세개를 지키는 것도 낯설고, 빨랫방망이처럼 생긴 배트로 공을 쳐내는 것까지 모든 게 어려웠다.

크리켓 전용 경기장이 없어 선수들은 야구장과 축구장을 전전했다. 크리켓은 피치라고 불리는 딱딱한 흙바닥 공간(길이 20m, 너비 2.64m의 직사각형 모양)에서 벌어지는 운동이다. 너른 잔디 구장 한가운데에 피치가 펼쳐져 있다.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국내에 피치가 갖춰진 운동장이 없어 직접 플라스틱 장판 따위를 피치 대용으로 구해와 운동장에 깔고 연습을 했다. 송도 엘엔지 실내야구장, 인천대 캠퍼스, 문학경기장 등을 돌아다니며 운동장이 비는 시간을 찾아 연습을 이어갔다.

“연습할 공간이 없어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가 많았는데 좀 처량했지요. 그래도 즐겁게 했어요. 하고 싶은 운동을 하는 게 중요한 거지 번듯한 운동장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팀의 막내 송승민 선수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글둥글하고 잘 웃는 송승민 선수였다.

인천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은 다 했지만 부상만큼은 피해가기 어려웠다. 김남기 이사는 선수들의 부상이 심해 과연 출전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6~7월에 네팔에서 전지훈련을 했어요. 여물지 않은 선수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하다 보니 부상이 속출했어요. 정아람 선수는 투수를 하면서 발을 바닥에 많이 굴렸는데 무릎 인대에 문제가 생겼고, 정혜진 선수는 주요 타자였는데 손가락뼈가 골절됐고요. 전지훈련 끝날 때쯤 되니까 열의 여덟은 다 여기저기 깁스를 했지요. 그래도 포기하는 선수가 한명도 없었어요.”

정아람 선수는 대회 2주를 앞두고 무릎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절대 경기에 나서지 말라”고 했다. 정 선수는 펑펑 울었다. 무릎이 깨져도 좋으니 제발 경기에 나서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결국 출전했다.

팀의 최고참 전순명 선수를 후배들은 ‘엄마’라고 불렀다. 전순명 선수는 ‘인생의 엄마’로서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다독였다.

“애들에게 그랬어요. ‘사람에게는 기회가 자주 오지 않아. 나는 46년 만에 이런 기회를 잡았지만 너희들은 나보다 20년이나 빨리 기회를 잡았으니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 함께 발전하자’고요. 우리 팀 선수들은 크리켓 국가대표팀으로서 연습한 것처럼만 하면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네팔 팀과 10번 중 2번 이긴 값진 경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도운 것처럼 선수들의 부상은 이를 악물면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 더이상 악화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종일 계속된 훈련 시간이 끝나면 자발적으로 연습을 하고 실력을 끌어올렸다.

“(이)진아가 네팔 전지훈련 때만 해도 배팅 실력이 좋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확 늘어 있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봤더니 숙소 문 닫아놓고 혼자서 스윙 연습을 계속했더라고요. 다들 밤에도 쉬지 않고 그렇게 연습을 계속했어요.”(전순명 선수) 이진아 선수는 가장 힘든 포지션으로 불리는 ‘위킷 키퍼’(야구의 포수와 비슷한 역할)를 자원해 주전 자리를 꿰찼다.

피나는 연습 끝에 선수들은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갔다. 네팔 전지훈련 때 열차례 정도 현지 팀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두번을 이겼다. 아시안게임 1승이 목표인 대표팀으로서는 ‘값진 경험’이었다. 네팔은 크리켓 실력이 중하위권으로 분류된다. 최선을 다하면 아시안게임에서 하위팀과 맞붙어 1승 정도를 할 수도 있다고 대표팀은 기대했다.

정아람 선수는 고등학생 때 무릎 부상으로 운동의 꿈을 접었다가 카페 서빙, 영화관 알바, 태권도장 사범 등의 일을 전전하다 지난해 크리켓을 만났다. 대회 직전까지도 병원의 의사는 정 선수에게 경기에 나서지 말라고 권했지만 그는 출전했고 멋진 경기를 펼쳤다. 9월22일 오후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한국과 홍콩의 경기에서 정아람 선수가 공을 던지고 있다.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정아람 선수는 고등학생 때 무릎 부상으로 운동의 꿈을 접었다가 카페 서빙, 영화관 알바, 태권도장 사범 등의 일을 전전하다 지난해 크리켓을 만났다. 대회 직전까지도 병원의 의사는 정 선수에게 경기에 나서지 말라고 권했지만 그는 출전했고 멋진 경기를 펼쳤다. 9월22일 오후 인천 연희 크리켓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한국과 홍콩의 경기에서 정아람 선수가 공을 던지고 있다. 인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인천 서구 연희동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에서 남쪽으로 500여m 떨어진 곳에 크리켓 경기장이 건설됐다. 국내 최초 크리켓 경기장이다. 9월20일 아시안게임 여자 크리켓팀 첫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다. 이번 아시안게임 크리켓 여자 종목에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크리켓 강팀을 비롯해 한국, 중국, 일본 등 열개 나라가 참여했다.

첫 상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부터 여자 크리켓팀을 육성해 현재 실력 면에서 중위권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강적이었다. 역시 중국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공격을 한국이 먼저 했다. 20오버(‘오버’는 야구의 ‘이닝’과 유사. 투수가 6개의 공을 던지면 1오버가 끝남) 동안 버텨야 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13.2오버 동안 49점만 내고 10명의 타자가 모두 아웃되어 버렸다. 중국은 15오버 만에 50점을 따내며 첫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전원 아웃 되지만 않았다면 70점대의 점수를 낼 수 있는 스코어를 보여주었다. 6개월의 연습만으로 이 정도의 실력을 보인 것에 중국 감독은 놀랐다고 한다.

이틀 뒤인 22일 홍콩전이 열렸다. 홍콩전에 앞서 홍콩 크리켓협회장은 인천 크리켓협회장에게 “우리는 100년간 크리켓을 했으니 한국은 배우는 마음으로 편히 즐기고 가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고 한다.

100년간 크리켓을 해온 팀은 역시 달랐다. 홍콩팀이 선제공격에 나섰다. 우리는 53점이나 내준 뒤에야 겨우 홍콩 선수 한명을 아웃시켰다. 한국팀을 응원하러 온 관중들은 우리 팀 선수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쳤지만 승부의 추는 홍콩 쪽에 확실히 기울었다. 홍콩은 20오버 동안 92점을 내고서 공격을 마무리했다.

한국의 공격 차례가 되었다. 평균 50점대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한국으로서는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점수를 따내어 57득점을 했다. 운명의 15오버를 9명의 타자가 아웃된 상태에서 맞았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21번 등번호를 단 가예빈(20)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홍콩의 투수 길 칸와르딥키누 선수가 공을 뿌릴 채비를 했다.

홍콩의 투수가 힘차게 달려와 피치 바닥을 향해 공을 던졌다. 한국 선수들은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듯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매섭게 날아든 공은 바닥에 한번 튕겨진 뒤 가예빈 선수의 방망이를 보기 좋게 피해갔고 위킷(타석에 세워진 나무 막대기)을 맞혔다. 가예빈 선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10아웃.(크리켓 경기에서는 공이 위킷에 맞으면 타자 아웃이다.) 한국의 도전이 이렇게 멈추었다.

8강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한국 여자 크리켓팀에 관중들은 그러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은 경기장을 빠져나와 “수고했다”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누군가 “파이팅”을 외쳤다. 볼이 빨개진 몇몇 선수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꼭 슬퍼서 흘리는 눈물만은 아니었다.

“아, 너무 아쉬워요. 집중해서 하면 전세를 뒤집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 공이 그만 배트를 벗어났어요. 다시 출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더 연습해서 꼭 1승을 해보고 싶어요.” 가예빈 선수가 홍콩전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그는 볼러(투수)에 집중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안나 선수가 4점짜리(야구의 홈런과 유사) 거포를 휘두르고 팀은 한 오버당 3.6점을 냈다. 홍콩은 오버당 4.6점을 기록했다. 6개월 연습한 한국 팀이 100년 전통의 팀에 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100년간 크리켓을 해온 국가에 한국은 졸전 끝에 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그것이 기쁘다.

중국 감독은 “정말 6개월 연습한 것 맞느냐”고 물었고, 한국팀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일본팀 감독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에라도 한국 여자팀과 친선경기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한국 여자 크리켓 대표팀은 메달을 딸 가능성이 애초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메달을 따지 않는 경기는 주목하지 않는다. 크리켓이라는 경기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 선수들이 피땀의 훈련을 이겨내고 크리켓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치 갖춰진 공간이 없어
축구장 야구장 전전하며
플라스틱 장판 깔고 연습
인천대 캠퍼스, 문학경기장
비는 시간에 간신히 이용

정아람은 무릎 인대에 문제
정혜진은 손가락뼈 골절
네팔 전지훈련 끝날 때쯤
열의 여덟은 깁스했지만
아무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스스로에게 수여한 ‘마음의 메달’

열아홉 소녀 송승민 선수가 말했다. “비인기 종목이라고 해서 국가대표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비인기 종목이라고 해서 덜 연습하는 것도 아니고요. 나라를 대표해 뛰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지요. 게다가 우리는 (국제대회에 처음 참가한) 크리켓의 새 역사를 쓴 주인공들이잖아요.”

“경기장에서 박수를 받고 싶었어요. 메달도 좋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격려해주는 관중의 박수요. 스포츠 정신은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몇 등을 하건 간에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박수를 받았기에 저희는 뿌듯해요.”(안나 선수)

“대회 조직위가 주는 메달은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선수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는 ‘마음의 메달’이라는 게 있어요. 피땀 흘려 노력한 만큼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뿜어내면 그 메달을 받게 되는 겁니다. 우리 팀은 그 메달을 받은 거예요.”(전순명 선수)

“아픈 무릎 때문에 난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운동을 그만두고 음식점 서빙, 영화관 알바 등의 일만 해왔던 제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어요. 크리켓은 저에게 인생의 희망을 주었어요.”(정아람 선수)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연아·박태환 선수 역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때부터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해왔고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여자 크리켓팀의 아시안게임 출전에 주목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이들 역시 최선을 다했기에 김연아·박태환 선수처럼 아름다운 웃음을 지을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4일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또 한번 활짝 웃을 예정이다.

29일 여자 크리켓팀 선수들은 중국과 일전을 치르는 남자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에 모였다. 남자 선수들이 6점짜리 거포를 연거푸 쏘아대자 여자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와, 대박, 감동” 등의 말을 외치면서 폴짝폴짝 뛰었다. 이날 남자 대표팀은 중국에 88 대 82로 이겼다. 국제대회 참가 사상 첫 승리였다. 여자 선수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흥분한 안나 선수가 “저도 저렇게 다시 뛰고 싶어요”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여자 크리켓팀은 앞날이 불투명하다. 인천시가 여자 크리켓팀을 더 운영할지 알 수 없고, 이번에 마련된 첫 크리켓 경기장이 아시안게임 폐막 뒤 유소년 축구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나시르 칸 여자 크리켓 대표팀 감독은 “비록 2패를 했지만 여자 크리켓팀의 국제대회 출전 경험은 한국 크리켓 역사의 중요한 자산이다. 부디 이 자산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의 도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인천/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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