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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요정의 우아함, 그 너머의 고통

등록 2014-11-02 20:29수정 2014-11-03 10:23

체조선수의 숙명, 부상과의 전쟁

아침마다 2시간 스트레칭하고
철봉에 매달려 발 들어올리기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가 10월1일 열린 2014 아시안게임 개인종합 예선에서 가슴을 앞으로 내린 채 두 다리를 일직선으로 펼쳐 회전하면서 공을 튕기는 팡셰 로테이션을 연기하고 있다. 다리를 일직선으로 펼치는 것도 힘들지만 속도까지 붙여 돌아야 하는 고난도 동작이다.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가 10월1일 열린 2014 아시안게임 개인종합 예선에서 가슴을 앞으로 내린 채 두 다리를 일직선으로 펼쳐 회전하면서 공을 튕기는 팡셰 로테이션을 연기하고 있다. 다리를 일직선으로 펼치는 것도 힘들지만 속도까지 붙여 돌아야 하는 고난도 동작이다. 인천/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몸이 아프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두들 참고 한다.” 리듬체조의 요정 손연재(20)는 최근 에스비에스(SBS) <힐링캠프> 녹화 때 이렇게 말했다. 리듬체조의 화려한 몸동작에 관중들의 눈은 즐겁지만 선수들은 고통을 몸에 달고 산다.

축구, 야구, 농구 선수들도 부상은 있다. 하지만 몸뚱어리 하나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체조는 매 순간 고통과의 전쟁을 치른다. 김주영 리듬체조 대표팀 감독은 “리듬체조는 한쪽 근육만 쓸 때가 많다. 가령 왼발로 계속 턴을 하면 왼발 쪽 관절이 망가져 오른발과 불균형이 된다. 오른손과 왼손도 마찬가지다. 오른손 동작이 많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던지고 받고 반복 연습을 하면서 미세하게 틀어진다.” 여기에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해야 하고, 몸은 아파도 연기를 위해서 환하게 웃어야 한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최초로 리듬체조 금메달 시상대에 오른 손연재나, 발목 인대가 끊어진 상태로 초인의 힘을 발휘해 단체전 은메달을 딴 맏언니 김윤희(23)가 펑펑 울었던 이유다.

리듬체조 선수의 하루 일과는 ‘늘이기’로 시작한다. 다리와 팔, 허리, 발목, 목까지 일체의 관절 부위 인대를 천천히 늘여주는 스트레칭은 고역이다. 신체 특성에 따라 몇달을 쉬어도 늘이기에 지장이 없는 선수도 있지만, 어떤 선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주 늘이기를 해야 한다. 손연재의 경우 5살 때부터 했으니 15년을, 김윤희는 17년을 투자했다. 하루 6~7시간의 강훈련 가운데 늘이기에만 3분의 1에 해당하는 2시간 이상을 쏟아야 한다. 근육과 인대를 충분히 풀어주지 않으면 다채로운 연기를 할 수 없다.

스트레칭은 지루하고 눈물겹다. 양다리를 90도 이상 벌리기도 쉽지 않은데, 이들은 다리의 각도가 180도를 넘을 때도 있다. 극한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까? 김주영 감독은 “경기 때나 늘이기를 할 때나 자기와 대화를 한다. ‘잘한다. 잘할 거야, 할 수 있어’라고 주문을 왼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무너진다. 심적인 동요가 있으면 혼자서 우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맬컴 글래드웰은 한 분야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1만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스포츠에서는 시간의 양뿐만 아니라 유전자도 중요하다. 리듬체조 선수들은 타고난 재질을 바탕으로 1만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을 쏟아부으며 동작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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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의 특성도 있다. 리듬체조 선수들은 후프, 볼, 곤봉, 리본, 줄 다섯 가지 가운데 국제체조연맹이 2년마다 정하는 네 가지 종목을 연기해야 한다. 종목당 1분30초로 짧아 보이지만 잇따라 네 종목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얼핏 보면 가벼워 보이는 선수들의 의상도 갖가지 장식으로 무게가 꽤 나간다. 국내외 대회를 막론하고 하루에 예선과 결선을 다 치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두 번을 반복해야 한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늘이고, 뛰고, 보강하고, 마사지하면서 밤까지 버텨야 하는 상황도 있다.

그렇다고 육체미 선수처럼 웨이트를 해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들 수는 없다. 몸의 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몸속에 찰고무처럼 탄성 넘치는 섬세한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재활 트레이닝 전문가인 고강민 힘스포츠 대표는 “자기 몸의 무게로 특정 부위에 부하를 주면서 근육을 발달시킨다. 이런 근육훈련은 횟수가 중요해 반복적으로 해줘야 한다. 단조로운 운동이어서 트레이너들은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회전축인 발목이나, 척추를 강화시키고, 몸의 중심점을 낮추기 위한 운동이다.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이지만 모두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회전을 더 빠르게 많이 할 수 있다.

보통 초등학생 체조 선수들은 복근을 키우기 위해 철봉에 매달린 뒤 양발 끝을 모아 위로 끌어올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일반인들은 매달려 있기도 힘든 철봉에서 선수들은 20개, 30개를 이를 악물며 해낸다. 리듬체조 선수들은 더 많이 해야 한다. 배의 근력이 점프의 기초이고, 등의 근력이 있어야 한쪽 다리로 서서 다른 쪽 다리를 잡을 수 있다. 몸의 모든 부분을 활용하는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모든 근육이 힘을 발생시킬 수 있어야 한다. 1단계 근육을 만드는 것이 트레이너의 몫이라면, 2단계로 고난도 예술 연기는 전문 코치가 담당한다. 이들은 몸의 아름다운 기술 표현을 위해 근력, 균형, 조화, 유연성 등을 다시 끌어올린다.

섬세한 근육 키워야 부상 줄어
발목 틀어지고 골반뼈에는 금
같은 동작 반복 “속으로 울어요”

물리법칙을 초인적 인내로 역행하면서 몸은 상처를 입는다. 한 발 끝으로 서서 도는 푸에테 피벗, 한 발을 뒤로 올려 잡고 서는 아라베스크 피벗, 가슴을 아래로 내린 채 중심을 잡고 돌아야 하는 팡셰 로테이션을 보자. 모두 한 쪽 발을 축으로 많이 빨리 돌아야 한다.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도 엄청난 무리가 온다. 가뜩이나 연기 중 신발이 벗겨지면 마찰력이 더 커져 발목이 상한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대개의 선수들은 왼발목이 온전치 않다고 한다. 선수들은 유명해진 만큼 몸은 망가져 있는 모습을 확인한다. 고강민 대표는 “관절은 뼈와 뼈가 이어지는 부분인데 둘을 잡아주는 게 인대다. 매트에 발을 딛고 돌면 발은 박히고 발목 위는 돌아가기 때문에 무리가 발생한다. 때문에 발목이 흔들리지 않게 근육훈련을 한다”고 했다.

인대가 약하면 관절 주변의 근육을 대신 키워야 한다. 고무줄 밴드를 이용하거나, 손으로 관절 부위를 구부리고 펴는 식으로 자극을 주는데 이런 것은 그냥 꾹꾹 눌러주는 마사지와는 다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딴 김윤희의 경우 발목 인대가 아예 끊어져 주변 근육을 키워 관절을 잡아주었다. 지난해에는 무릎 연골 수술까지 받았다. 전문가들은 “손상된 연골과 인대를 주변 근육으로 지탱할 수 있도록 재활을 했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력”이라고 했다. 발목의 아킬레스, 발바닥, 무릎의 슬관절, 연골은 다 닳았고 허리는 아프다. 발바닥에는 생겼다 사라진 물집으로 굳은살이 박였다. 심지어 잦은 점프로 발바닥의 아치형 선이 무너진 경우도 있다. 선수 시절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골반뼈에 금이 가거나 다른 위치에 가 있는 것을 뒤늦게 알 때도 있다고 한다.

물리치료사 겸 트레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틀어진 발목, 무릎, 허리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손연재의 경우 송재형 송피지컬트레이닝 원장이 전담해서 몸의 중심을 잡아주고, 러시아 전지훈련 때는 따로 트레이너를 데리고 간다. 그 외 대표팀 선수들은 고강민 트레이너가 주로 몸을 관리해준다. 이 모든 게 돈이다. 외국의 경우 리듬체조가 동호인들의 클럽 형태여서 마사지사를 고용할 수 있지만, 우리는 소속사가 없을 경우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뒤 학교(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손연재의 경우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11월 스페인 갈라쇼, 연말이나 내년 초 예정인 러시아 전지훈련을 앞두고 여전히 개별훈련과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한순간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게 리듬체조 선수의 숙명이다.

정신적 압박감을 이기는 것도 리듬체조 선수의 기본이다. 기술 자체가 워낙 민감해 한순간에 무너지면 끝이다. 경기장의 조명과 수많은 관중들로 인한 혼란스러움과 긴장 속에서 자기 연기에 몰두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단순 반복과 긴장감 때문에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자기와의 싸움을 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치료가 중요하다. 손연재의 경우 박태환 선수의 심리치료를 맡았던 조수경 박사가 정신력 강화를 위한 지도를 하고 있다. 김주영 대표팀 감독은 “연재는 나름대로 자기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신감을 갖는 자기만의 조절법을 체득했다. 해외에 나가서도 혼자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손연재 이후 세상은 바뀌었다. 소정호 대한체조협회 사무국장은 “연재 이후 리듬체조 저변이 넓어졌다. 초등 3학년 이상의 꿈나무가 많아졌고, 정식으로 등록이 안 된 2학년 미만의 선수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연재 키즈’의 등장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하다. 남들 다 먹는 피자나 라면의 유혹이 크지만 참아야 한다. 참을 수 없다면 먹은 만큼 그 열량을 훈련을 해서 빼야 한다. 선수들은 내색을 잘 안 하지만 속으로 운다. 그 고통 앞에서 “웬 실수?”라고 팬들이 쉽게 말할 때 선수들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한다. 김주영 감독은 “연재는 재능도 뛰어나지만 노력파이고, 어렸을 때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책을 보는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도 기대가 된다. 그의 밝은 미소 뒤에 피나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더 많이 응원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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