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자기 차를 직접 튜닝한 동호인들의 대회 참가가 늘고 있다. 튜닝산업은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꼽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진은 지난해 4월 강원 태백에서 열린 지티(GT)클래스 경기 모습. 슈퍼레이스 제공
쑥쑥 크는 아마추어 모터스포츠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부앙” 하는 자동차 굉음이 연이어 F1 서킷에 울려 퍼졌다. 수십대의 자동차들이 급격한 커브를 줄지어 쏜살같이 돌자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25분간의 주행이 끝나고 서킷 밖으로 나온 레이서들이 헬멧을 벗자 한겨울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F1 경기장을 질주한 이들은 프로 레이서가 아닌 아마추어 동호인들이었다.
3일 전남 영암에 있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에서는 겨울시즌 3차 주행에 참여한 차량으로 북적였다. 한편에는 전날 내린 눈이 아직 쌓여 있었지만 비교적 따뜻한 날씨 덕에 다행히 서킷을 주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전국에서 차를 가지고 영암까지 온 50여명의 동호인들은 클래스에 따라 두 조로 분류돼 번갈아가며 아침부터 오후까지 원없이 속도감을 즐겼다. 다른 한쪽에서는 국제 규격의 영암 서킷을 주행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따기 위한 지원자들의 시험이 한창이었다. 라이선스 취득자는 2011년 808명에서 현재 3000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국내 아마추어 모터스포츠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은 아마추어 부문 참가 선수가 2011년 89명에서 지난해에는 161명으로 갑절 가까이 늘었고, 씨제이(CJ) 슈퍼레이스도 지난해부터 아마추어 대회인 엑스타챌린지를 신설했다. 최근 2~3년 사이 레이스를 즐기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늘어나면서 모터스포츠는 일부 마니아와 프로의 전유물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생활·레저스포츠로 발전하고 있다.
영암뿐 아니라 인제·태백 등
국내서킷들 일반인 참여 확대
동호인 늘어나 대회 신설까지
“직장 스트레스 한번에 날아가” 타이어·브레이크·서스펜션…
기본 개조 300만원이면 적당
국내 튜닝산업은 아직 ‘걸음마’
“타이어 빼곤 대부분 수입부품”
국토부 “소음 등 환경부 협의 필요”
이런 추세에 발맞춰 영암을 비롯해 인제스피디움, 태백레이싱파크 등 국내 서킷들은 일반인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서킷을 체험할 수 있는 트랙데이 행사를 열 때마다 수많은 동호인들이 줄을 서고, 한 타임(25분)에 4만원이 되는 주행권 판매도 늘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던 영암 서킷은 2013년을 기점으로 흑자 전환했다. 특히 남쪽에 위치해 겨울에도 서킷 주행이 가능한 영암 서킷은 2013년부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대회가 열리지 않는 겨울에 시즌제 주행권을 판매해 큰 호응을 얻었다. 2013~2014 시즌에는 74명이던 참가자가 이번에는 234명으로 크게 늘었다. 12월19일부터 3월1일까지 10주 중 격주로 5주간 금·토·일 사흘씩 총 15일 이용할 수 있는데 가격도 65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대전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남기문(31)씨는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는데 직장생활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자동차를 타면서 해소한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남씨처럼 평범한 직장인이 자신의 자가용을 가져와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아마추어 동호인이다.
일부는 순정차(양산된 상태 그대로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서킷 주행에 적합하게 튜닝을 했다. 남씨는 “평범한 직장인 입장에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더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 투자한 것”이라며 “브레이크 튜닝을 해서 사고를 막아주면 오히려 돈을 아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서스펜션 정도가 기본 튜닝 사항이다. 여기에 엔진이나 변속기, 시트 등을 튜닝하는 사람도 있다. 남씨는 “국산차 기준으로 브레이크 패드 40만원, 서스펜션 150만원, 타이어 100만원 해서 300만원 정도면 서킷을 즐기기에 충분한 튜닝”이라고 설명했다.
12년 전부터 모터스포츠 동호인 활동을 한 베테랑 이대현(43·부산·자영업)씨는 “모터스포츠는 태생적으로 장비와 같이 가는 스포츠로 비용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라면 큰돈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좋다”고 조언했다. 이씨는 “다른 스포츠가 연령이나 체급으로 나뉘는 것처럼 모터스포츠는 마력과 배기량 같은 성능으로 클래스를 나눈다. 초보자가 고성능, 풀튜닝 차로 시작하면 초등부가 갑자기 고등부 시합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수준에 맞는 적당한 차로 시작한 다음 필요를 느끼는 것부터 하나씩 튜닝을 해나가다 보면 자기에게 맞는 자신만의 차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고급 외제차 사이에서 이씨는 튜닝된 1400㏄ 준형차로 레이스를 즐겼다.
모터스포츠와 튜닝은 불가분의 관계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하게 주행을 즐기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튜닝에 대한 수요는 커진다. 모터스포츠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튜닝 수요는 늘어났지만 국내 튜닝산업은 여전히 열악하다. 미국이 35조원, 독일이 23조원, 일본은 14조원 규모의 튜닝시장을 형성한 것과 달리 국내 튜닝산업의 규모는 5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나마 대부분 외장이나 액세서리, 부속품 관련 산업으로 핵심인 성능 관련 부품 산업의 규모는 400억원(추정)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미국, 독일, 일본, 중국과 더불어 5대 자동차 생산국인 것을 생각하면 국내 튜닝산업은 이상할 정도로 왜소하다.
공업사를 운영하며 동호인으로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전호산(41)씨는 “여기에 온 차들을 보면 타이어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입 부품을 쓴다. 나도 자동차 관련 일을 하는데 국내 튜닝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다 보니 국산차 부품인데도 수입품이 더 잘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정부는 튜닝산업을 창조경제 핵심산업 중 하나로 지정하고 활성화하겠다고 나섰다. 2013년 국토교통부가 튜닝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 6월에는 국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공동으로 2015년부터 튜닝산업을 본격화하겠다며 ‘튜닝산업 진흥대책’을 발표했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튜닝산업을 언급하며 규제완화를 지시하자 튜닝업계의 기대감은 상승했다. 전남, 대구, 전북, 충북 등 지방자치단체도 앞다퉈 대규모 튜닝산업단지를 유치하겠다며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관련 규제를 크게 완화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질적인 규제완화는 없었다는 평가다. 이달 8일부터 튜닝 활성화의 핵심 정책인 부품인증제가 시행되지만 아직까지도 인증기관이 정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튜닝산업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한다. 세계적으로 튜닝산업은 완성차업체, 모터스포츠와의 공조를 통해 발전한다. 완성차업체는 튜닝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을 개발하고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벗어나 제품을 다양화할 수 있다. 장형성 한국자동차튜닝협회 회장은 “정부는 규제개혁을 외치고 있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튜닝문화가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 월드컵경기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동네 운동장이 많아야 되는 것처럼, 곳곳에 소규모 서킷과 주행코스가 만들어져 자동차가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문화적인 것이 돼야 튜닝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석창 국토부 자동차정책기획단장은 “우리도 튜닝문화를 활성화하는 쪽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이 없어서 그러는데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완성차업체, 보험사와도 계속 협의중이다. 소음이나 배기가스, 서킷 개발과 관련해 환경부 등 다른 부처와 협의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윤현주 전남개발공사 케이아이시(KIC)사업단 팀장은 “과거 모터스포츠는 위험하고 값비싼 스포츠라는 인식이 컸는데 전남도에서 영암 서킷을 인수한 뒤 비교적 저렴하게 서킷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저변 확대에 계속 노력중이다. 현재 모터스포츠의 성장세를 볼 때 튜닝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영암/허승 기자 raison@hani.co.kr
국내서킷들 일반인 참여 확대
동호인 늘어나 대회 신설까지
“직장 스트레스 한번에 날아가” 타이어·브레이크·서스펜션…
기본 개조 300만원이면 적당
국내 튜닝산업은 아직 ‘걸음마’
“타이어 빼곤 대부분 수입부품”
국토부 “소음 등 환경부 협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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