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가리왕산에 안전핀은 없는가

등록 2015-02-08 20:12수정 2015-02-08 21:06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 중봉 일대는 수백년 자란 수목들이 즐비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다. 단 사흘 동안의 겨울올림픽 경기를 위해 수백년 동안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무참히 베어지고 있다.
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 중봉 일대는 수백년 자란 수목들이 즐비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다. 단 사흘 동안의 겨울올림픽 경기를 위해 수백년 동안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무참히 베어지고 있다.
[르포] 평창 겨울올림픽의 저주
겨울산은 을씨년스러웠다. 거침없이 진행된 벌목으로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완전히 초토화돼 있었다. 나무의 시신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절단된 시신들은 일정한 장소마다 야적되어 있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서 서로 맺어져 있던 나무뿌리들은 통째로 뽑혀서 함부로 방치되어 있었다. 노련하고 신속하게 벌목하기 위해 장치해 놓은 표지나 시설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고 공사 중에 고장난 기계 부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거대한 나무들의 시신 주변으로는 작은 가지들이 흡사 신체를 잃은 여린 팔과 다리처럼 쓰러져서, 늠름했던 아름드리나무의 기억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잡목 가지로 변했다. 활강 코스의 기술적인 구성에 따라 벌목 구간 사이사이에는 그나마 몇 그루의 나무들이 참수의 형을 피해 서 있었는데, 그 나무들은 모두 벌을 받고 있는 듯했다. 하늘을 향하여 의연하게 서 있던 나무 한 그루는 그만 목이 잘린 채 이 무자비한 공사의 비극성과 무모함을 처연하게 상징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 겨울산과 이웃하여 어깨를 서로 빌리면서 아득하게 펼쳐진 산들의 풍경은 장엄하건만, 이 겨울산, 가리왕산 중봉 일대는 완전히 잘리고 발가벗겨졌다.

올림픽 활강 3일간 경기 위해
슬로프 지역 5만여그루 벌목
지금 그곳은 파괴된 폐허
나무·꽃·풀·생물들의 조문행렬

스포츠가 도시발전 기여는 옛말
AG 인천, 육상대회 대구 등
‘메가이벤트 저주’는 현재진행형

딱따구리의 하소연은 들었는가
국화바람꽃의 애원이 들리는가
‘분산 개최’가 늦었지만 해답

가리왕산은 최고 높이 1561m로 지난 2008년 여의도 면적의 2.3배인 1948㏊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산이다. 천연기념물은 주목을 비롯하여 전나무, 분비나무, 피나무, 왕사스래나무, 구상나무, 물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등 그 이름만 불러봐도 입가에 잔향이 돌고 마음 깊이 신성한 기운이 스며드는 나무들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장소 어디서든지 한번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보기 바란다. 물-들-레, 산-개-버-찌, 땃-두-릅, 올-벚….

이제 적어도 가리왕산 중봉 일대에서는 이 나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기억조차 곧 멸실될 것이다. 무려 5만그루가 넘게 벌목되었다. 어디 나무들뿐인가. 이루 셀 수 없는 풀들과 꽃들과 또 그 숲 속에서, 땅 밑에서, 나무 위에서 살아가던 생명들은 차마 더 말하기에 숨이 막힌다. 좀호랑버들, 왕느릅, 애기쐐기풀, 국화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갈퀴현호색, 애기기린초, 좀꼬리까치밥나무, 금강제비꽃… 나는 지금 조문록을 읽듯이, 옮겨 적는 중이다.

이 일대를 활강 슬로프로 선정하는 데는, 오로지 ‘활강이 가능한가’ 여부 외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고려되지 않았다. 표고차 800m 이상,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슬로프 길이 3000m 이상이라는 3가지 요건 때문에 정선 일대의 두위봉, 만항재, 상원산 등이 검토되었는데 상원산은 관중석 등 시설 터 확보 문제로, 만항재는 남서사면 위치상 설질 관리에 대한 위험부담 때문에, 두위봉은 슬로프 하단부의 완경사가 너무 긴 탓에 제외됐다. 딱따구리의 하소연은 듣지 않았고, 국화바람꽃의 애원은 검토되지 않았다. 철쭉 군락은 사라졌고, 밑동 지름이 1.2m에 달하는 왕사스래나무는 잘려나갔으며, 가슴 높이 지름이 1.23m에 달하는 들메나무도 한순간에 쓰러졌다.

7일 가리왕산 중턱에 허리째 잘린 전나무가 서 있다.
7일 가리왕산 중턱에 허리째 잘린 전나무가 서 있다.
문제는 이 거침없는 행정이 고작 사흘 동안의 경기를 위해 벌어졌다는 것이다. 주무 관청인 산림청은 “가리왕산 숲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의 원형대로 복원한다”고 몇 차례나 말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직무에 대하여 최소한의 공적 헌신이 있다면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말에 평생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거침없는 벌목은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지만 원형 복원은 수십년, 수백년의 자연의 시간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시간 안에서는 그 미미한 증후도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메가이벤트가 21세기에 들어 결코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가 아님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과도한 투자로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올림픽의 저주’라는 말까지 낳았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2014년 월드컵을 위하여 2300억원을 들인 쿠이아바 판타나우 경기장이 아무런 사후 활용 없이 방치되고 있다. ‘축구의 나라’가 이럴진대 상대적으로 종목의 다양성이나 확산성 그리고 사후 활용 방안 폭이 좁은 겨울올림픽은, 러시아 소치가 무려 500억달러의 적자를 남겼듯이, 그 수지타산이 쉽지 않다. 이것은 ‘수학’이 아니라 ‘산수’의 문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한때는 개최국이나 도시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알려지긴 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의 양상은 달라졌다. 스포츠 내적인 변화부터 살펴보자. 우선 스펙터클(거대한 구경거리)의 다양화가 있다. 스포츠 말고도 보고 즐길 것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스포츠 그 자체도 다차원적으로 접근하여 저마다의 기호와 성향에 맞게 즐기는 경향이 세계적인 추세다. 특정 종목을 보기 위해 거금을 들여 특정 지역을 방문해야 하는 일은 급격히 줄고 있다.

다음으로 특정 종목의 성과로 그 나라의 스포츠 발전 양상을 판별하는 20세기식 관점이 시들해지고 있다.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최고 선수들의 초월적 세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사를 보내지만, 메달 획득 여부로 그 나라와 도시를 판별했던 20세기식 스포츠 관전법은 시들해지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극소수의 스포츠 강대국이 메달을 독식하고 그 대회 분위기를 완전히 독점하는 양상은 지루한 수준을 넘어 비판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인부들이 설치한 벌목 표지.
인부들이 설치한 벌목 표지.
스포츠 외적인 변화를 보자. 우선 도시 감각이 변했다. 20세기 내내 지구의 많은 도시들이 오로지 ‘발전’ 일변도로 줄달음쳤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도시는 비대해졌지만 인간은 왜소해졌다. 그럼에도 국가와 지방정부 그리고 이 거대한 기구에 한 발이라도 걸치고 있는 자들은 막대한 자원 낭비와 행정 파탄을 일삼는다. 큰 정부나 작은 정부나 큰 대회를 유치하겠다고 출마하고 그것을 성사시키겠다고 또 나서고 그것을 잘 마무리하겠다고 다시 출마하는 작태가 지구 곳곳에서 전염병처럼 창궐한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에 대한 욕망,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로서 스포츠 메가이벤트를 공깃돌처럼 활용하는 일들에 대하여, 이제는 일상적 환멸과 의미있는 비판이 일어나는 중이다.

아니, 다른 나라를 찾아볼 것도 없이, 바로 이 나라에서 수년째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던가. 21세기의 도시 성격과 시민들의 변화된 일상 감각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조잡한 개막식과 엉성한 대회 운영 끝에 거의 시 재정을 파탄 지경으로 몰아넣은 인천이 대표적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전남도의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F1 대회 조직위원회가 결국 해산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10년 첫 대회 후 2013년까지 운영비용에서만 모두 1900여억원의 적자를 남겼다. 어떤 방식으로든 수익 창출이 완전 불가능하고 이 대회를 핑계로 공공투자비율을 높게 산정해서 타당성 없는 대회를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다. 인천(아시안게임), 대구(육상), 청주(조정) 등 크고 작은 국제대회 끝에 ‘메가이벤트의 저주’라는 늪에 빠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부채 규모가 6000억원에 달하는 강원도에서는 올림픽 관련 시설에는 사업비의 70~75%를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게 한 특별법을 안전핀 삼아 사전 환경영향평가나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무리한 과잉·중복 건설투자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안전핀은 언제든지 뽑혀나갈 수 있고 그 파탄은 결국 도민과 국민들의 혈세 부담으로 직결된다.

굴착기를 비롯한 각종 공사장비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굴착기를 비롯한 각종 공사장비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누군가는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도로도 남고 건물도 남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사회 구성의 변화와 문화 활성화의 본질에 무지하거나 무시한 궤변이다. 사회 구성의 변화, 특히 인구 구성의 변화는 20세기형 도시, 즉 4인 가족 위주로 구성된 기존의 사회 패턴을 흔들고 있다. 스키장 산업은 계절 요인뿐만 아니라 4인 가족 구성의 해체 또는 변화에 따라 차차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저출산 고령화는 현재와 같은 4인 가족 중심의 야외활동 레저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건물 또한 마찬가지다. 10여년 동안 중소도시들마다 큼직한 문화공연시설을 앞다퉈서 지었지만 막상 그 속을 채울 만한 콘텐츠는 부족해 대부분 건물 유지·관리에 급급하다.

정부와 조직위 그리고 강원도가 그 많은 시설들의 ‘사후 활용 방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천억원을 들여서 짓고 나서는 고작 며칠 쓰고 해체한다거나 복원한다거나 하는 수준이다. 급격하게 변화되고 해체되는 사회 구성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문화레저산업의 내적 본질 또한 무시한 채 진행되는 토목 건설 일변도의 메가이벤트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방법은 없는가. 올림픽 분산개최 운동에 힘을 쏟고 있는 녹색연합의 활동가 배보람(32)씨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해석의 여지는 있지만, 더이상 메가이벤트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어젠다 2020’을 통해 유치 과정의 간소화와 도시간, 국가간 분산개최’라는 퇴로를 열어놓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국가주의와 개발주의, 상업주의로 개별 국가의 주권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아이오시의 힘은 줄어들고 있고, 마땅히 줄어들어야 한다. “인천 학습효과 때문에 도민들의 민심도 변하고 있다. 처참하게 파괴된 정겨운 마을과 산들을 보면서 더이상 장밋빛 구호에 속지 않겠다는 여론이 늘고 있다”고 배보람씨는 말한다.

문제는 국가다. 조직위와 강원도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물론 강원도는 도민들의 민심을 이제라도 제대로 수렴해야 하고 조직위는 미래의 올림픽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찾아내야 한다. 격렬한 세계적 문화 변동에 스스로 무지하면서 이에 비판적인 의견을 무시하는 처사는 위험하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정윤수 문화평론가.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2011년 7월 당시 민동석 외교통상부 2차관은 평창올림픽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향해 ‘국민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 무시무시한 국가주의, 국가가 결정하면 국민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맹동주의가 여전히 평창과 강릉과 정선의 거룩한 산과 마을과 삶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 무서운 정서가 평창올림픽을 지배하는 상황,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글·사진 정선/정윤수 문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