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팬 별을 만나다] ⑨ ‘의지의 스케이터’ 이정수
“그때는 정말 사람이 힘들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쇼트트랙 국가대표 이정수(26·고양시청)는 2010년 있었던 파벌과 짬짜미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정수는 21살 어린 나이에 2010 밴쿠버올림픽 2관왕에 오르며 일약 스타가 됐다. 그러나 불과 한달 뒤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터진 파벌 논란과 짬짜미 사태로 이정수와 곽윤기(26) 사이의 담합과 갈등이 언론에 노출됐고 두 선수는 함께 3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다. 올림픽 영웅에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잘못은 어른들이 저지르고 선수들만 희생양으로 삼느냐’는 여론에 못 이겨 징계는 6개월로 줄어들었지만 이후 이정수는 긴 슬럼프에 빠졌고, 2014 소치겨울올림픽 출전에 실패했다. 이정수의 이름은 잊혀져가는 듯했다.
이정수의 팬 백은희(28)씨는 5년 동안 이정수의 영광과 고난을 지켜보며 한결같이 응원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 시즌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이정수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4차 대회 남자 3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다. 지난달 20일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이정수를 만난 백씨는 그의 몸 상태부터 물어봤다.
2010밴쿠버 2관왕 뒤
파벌·담합 논란 추락
“징계 받고 힘들었지만
어설프게 끝내긴 싫었어”
지난 월드컵서 부활 신호탄
“평창 금메달 생각뿐이에요”
백은희(이하 백) 몸 상태는 어때요?
이정수(이하 이) 4차 대회 전에 연습을 하다 좀 다쳐서 생각만큼 경기를 잘하지 못했어요. 지금 아픈 데는 없어요. 체력적으로는 옛날이랑 비슷한데 이제는 체력만 가지고 국제 무대에서 안 먹혀요. 예전에는 앞에서 끌면서 체력으로 버티는 게 제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외국 선수들이 쉽게 따라와요.
백 올림픽 직후에 짬짜미 사태로 징계를 받았잖아요. 어린 나이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 진짜 힘들었어요. 선수로서 많이 배운 시간이기도 해요.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고요. 하지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그렇게 어설프게 끝낼 수는 없잖아요.
백 곽윤기 선수와는 이제 완전히 화해한 건가요?
이 윤기랑은 진작에 다 풀었어요. 2012년에 대표팀에 같이 들어왔는데 처음엔 좀 서먹했어요. 그런데 같이 비디오게임 하면서 풀었어요. 이제 윤기랑은 감정이 전혀 없어요. 좋은 친구예요.
백 성격이 쿨한 것 같아요.
이 심리 치료를 해주는 선생님이 계신데 저보고 멘탈갑이래요. 원래 성격이 오래 마음에 담아두거나 하지 않아요. 소치올림픽 때는 방송 해설을 했거든요. 그때 주변에서는 대회에 출전 못 한다고 걱정을 많이 해주시는데 저는 그냥 재밌었어요. 아쉽거나 그런 느낌보다는 ‘내가 못 갔으니 너네들이라도 잘해줘라’ 이런 생각으로 응원하면서 재밌게 방송했어요.
백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려고도 했었는데 그땐 어땠나요?
이 사실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 떨어지고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스피드로 전향을 했어요. 그냥 멍하니 있으면 아쉬우니까. 그런데 정말 쉽지 않아요. 신체조건이 정말 중요한데 (이)승훈 형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승훈 형은 체력도 좋고, 다른 것도 다 좋아요. 워낙 노력형이기도 하고.
백 곽윤기 선수는 빅토르 안(안현수)을 꺾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이정수 선수는 누구와 가장 겨뤄보고 싶어요?
이 저는 노진규랑 가장 붙어보고 싶어요. 진규가 빨리 회복돼서 한번 제대로 겨뤄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형이랑도 제대로 붙어본 적이 없네요.
백 2018 평창올림픽이 되면 이정수 선수 나이가 소치올림픽 때 안현수 선수 나이네요.
이 저는 현수 형 보고 많은 힘을 얻어요. 그런 논란과 일들을 겪고도 현수 형이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좋은 결과를 냈잖아요. 사실 저랑 현수 형이랑 모든 면에서 다르지만 비슷한 것도 있어요. 현수 형이 토리노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나이에 제가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땄고, 현수 형이 파벌 논란이랑 부상으로 힘들어한 나이에 저도 같은 일로 슬럼프 겪었고, 현수 형이 밴쿠버 선발전 탈락하고, 저도 소치 선발전 탈락하고. 이제 현수 형이 소치에서 금메달 땄으니까 저도 평창에서 금메달 따야죠. 지금은 그것만 바라보고 있어요.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파벌·담합 논란 추락
“징계 받고 힘들었지만
어설프게 끝내긴 싫었어”
지난 월드컵서 부활 신호탄
“평창 금메달 생각뿐이에요”
이정수가 지난달 20일 서울 노원구 태릉 빙상장에서 팬 백은희씨와 만나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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