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국회의원 ‘겸직 금지’ 권고
정치인 스포츠단체장들의 고민이 깊다. 국회법에 따른 스포츠단체장 겸직 사퇴 권고 시한은 1월31일로 끝났다. 강제성은 없어 자리를 지켜도 된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 따갑고,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직업이어서 좌고우면이 길어지고 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어한다. 하지만 나 몰라라 하고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욕심이 아니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국회의원 보좌관은 “지금 등 떼밀려 나가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싫다. 명예롭게 퇴진하고 싶어한다”며 자존감을 강조했다. 스포츠단체장 겸직을 특권으로 보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정치인 스포츠단체장이 스포츠 정치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재정과 인력, 기획 능력에서 스포츠단체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세력 간 파벌까지 내부 갈등은 고질적이다. 경기인 출신이 협회장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래서 자생성보다는 외부에서 힘을 빌리는 의존적인 성격이 됐다. 재력이 있는 기업인이나 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인이 스포츠단체장을 맡게 된 배경은 일방이 아니라 쌍방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 물론 대한농구협회처럼 정치인들의 입질을 배격하고 정통 농구인을 수장으로 뽑아서 어느 때보다 혁신적으로 협회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스포츠 정치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꼽힌다. 축구인들은 “70년대 장덕진 협회장 시절 축구인들이 막걸리라도 마시게 됐다면, 90년대 정몽준 회장의 부임으로 맥주를 마시게 됐다”는 얘기를 한다. 월드컵 유치와 프로축구 활성화, 축구회관 건립과 재정 자립 다지기까지 정 회장의 업적은 분명하다. 하지만 월드컵 4강의 인기를 2002년 대선에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해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남녀 프로농구 총재를 역임했던 것은 권력 실세들의 노골적인 탐욕이었다. 남자 프로농구의 인기는 당시 바닥을 쳤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단체 56곳의 단체장 가운데 7명이 새누리당 출신이고, 세계 태권도의 총본산인 국기원 이사장도 새누리당의 홍문종 의원이다.
체육단체선 재정 확보에 도움
정치인들은 인지도 상승 ‘윈윈’
정몽준 축구협회장 맡았을 때
“막걸리 대신 맥주 마시게 됐다”
관련 없는 정권실세들이 눈독
선거때 조직동원 등 역효과도 재정자립 등 각 협회 상황 달라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지만…”
“명예롭게 퇴진” 볼멘소리도 정치인들이 스포츠단체장 제안을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잠재적인 이득이 있다. 한 경기단체의 사무국장은 “정치인들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팬 규모가 크거나 젊은 팬들이 많은 종목을 선호한다. 팬의 규모가 작은 비인기 종목이라도 올림픽 종목이라면 맡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이라 할지라도 그 지역에는 체육 관련 동호회원들이 있고 조직이 있다. 알게 모르게 힘이 된다. 노출되면 인지도가 올라가고, 체육계 네트워크를 통해 인맥을 넓혀갈 수도 있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증명된 바는 없지만 개연성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명함에 회장 한 줄 파고 다니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책임감이 크다”고 말했다. 나름 애써왔는데 오로지 정치적 목적에서 단체장을 맡는 것처럼 비치는 게 억울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주로 비인기 종목 스포츠단체장들의 불만이다. 사직 권고를 받은 홍문표 대한하키협회 회장은 “후임자를 빨리 찾아라. 2월 중으로 떠나겠다”고 협회에 통보했다. 이학재 대한카누연맹 회장이나 박완주 대한장애인당구협회 회장도 사의를 밝히고 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정치인도 있다. 전병헌 의원은 대한체육회 인정단체인 한국e스포츠협회장이었지만 지체없이 그만뒀고, 우원식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회장은 기업인 후임자를 영입해놓은 뒤 물러났다. 대부분 “후임자 작업이 윤곽을 드러내면 떠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각 협회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새 회장을 영입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집행부 구성으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대한하키협회 집행부는 홍 회장의 사의 표명에 급히 하키인들 3000명의 서명을 받아 정의화 국회의장한테 사퇴 권고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최근 전달했다. 박신흠 하키협회 사무국장은 “남은 임기만이라도 채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사직 권고를 한 국회의장이 입장을 바꿔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홍문표 의원의 경우 2009년 농어촌공사 사장 시절 하키협회장을 겸직한 뒤 지금까지 맡고 있다. 비교적 무난하게 끌고 왔다는 게 중론이다. 하키협회의 한 직원은 “후원사 영입 등 협회 재정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내부 반발이 심하지 않은 사실이 회장의 존재감을 증명한다”고 했다. 대한복싱협회나 대한카누연맹도 마찬가지다. 최희국 복싱협회 사무국장은 “당장 그만두면 진행해왔던 사업이 중단된다. 장윤석 회장은 국제복싱협회 집행위원이기도 한데 집행위원은 겸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회장이 바뀌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했다. 김은석 카누연맹 사무국장은 “회장 공백이 생기면 후원금을 내는 부회장단이 흔들리게 된다. 후임자 물색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해답이 안 보인다”고 답답해했다. 체육계의 ‘정치인 의존증’은 권력에서 나온다. 홍문표 회장이 하키협회 쪽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 이유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라는 배경이 있다. 집권당 의원만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신계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마니아 수준의 배드민턴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4선이라는 관록의 힘이 작용한다. 실제 신 회장은 지난해 한국의 간판 선수인 이용대-김기정 복식조가 도핑 회피로 인한 자격정지 1년 징계를 받았을 때 넓은 법조계 인맥을 동원해 국제배드민턴연맹으로부터 징계 취소 결정을 이끌어내면서 내부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신계륜 의원 보좌관은 “차기 회장을 물색하라고 협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시점은 모른다”고 했다. 스포츠단체장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치다가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표시하는 쪽도 있다. 김태환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그런 사례다. 김태환 의원 보좌관은 “소년체전에 초등부 여자 태권도 부문을 신설했고, 경찰청 태권도팀을 창단했다. 또 중·고교 체육시간에 태권도 시범수업을 위한 예산까지 따냈다. 회장직을 떠나면 이런 사업들이 어려움에 부닥칠 것 같다. 손 떼고 싶어하지만 그순간 올스톱 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한다”고 했다. 대한야구협회의 이병석 회장 보좌관도 “목동야구장을 아마추어 야구의 산실로 쓰기 위한 세부 조건을 서울시와 맞춰야 하고 야구기념관 사업도 걸려 있다. 스포츠토토 지원금도 올해부터는 소요 예산을 신청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집행을 거쳐 받아야 하는데 지금 떠나면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치인 스포츠단체장들의 자업자득이라는 평가도 있다. 윤석용 전임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은 사건·사고의 대명사였다. 협회 직원들에 대한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통제와 독선적인 행정 뿐 아니라 선거판에 직원들까지 동원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한축구협회장에 도전하거나, 조전혁 전 의원이 대한농구협회장에 도전하는 식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스포츠 판에 기웃거리면서 이미지를 실추시킨 측면이 있다. 그야말로 정치적 야심 때문에 추하게 된 경우도 있다.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생활체육회 회장직 ‘겸직 불가’ 통보를 받았음에도 끝까지 자리에 눌러앉으려 하다가 지난달 말 사임했다. 그러나 물러난 뒤에도 후임자 인선에 자기 사람을 배치하려 하면서 진흙탕을 만들고 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큰 방향에서는 정치인 스포츠단체장의 겸직 금지는 맞다. 그러나 협회마다 사정이 다르고 재정 자립에서 영세한 비인기 종목의 경우에는 가림막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좀더 유연한 방식으로 문제가 풀렸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체육인들이 투명한 행정을 펼치고, 스스로 자생성을 갖출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협회장 관련 규정 보완 등으로 정치인의 스포츠단체장 겸직을 강력하게 규제할 방침이어서 올해 안으로는 정치인의 스포츠단체장 겸직은 모두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정치인들은 인지도 상승 ‘윈윈’
정몽준 축구협회장 맡았을 때
“막걸리 대신 맥주 마시게 됐다”
관련 없는 정권실세들이 눈독
선거때 조직동원 등 역효과도 재정자립 등 각 협회 상황 달라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지만…”
“명예롭게 퇴진” 볼멘소리도 정치인들이 스포츠단체장 제안을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잠재적인 이득이 있다. 한 경기단체의 사무국장은 “정치인들은 프로든 아마추어든 팬 규모가 크거나 젊은 팬들이 많은 종목을 선호한다. 팬의 규모가 작은 비인기 종목이라도 올림픽 종목이라면 맡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이라 할지라도 그 지역에는 체육 관련 동호회원들이 있고 조직이 있다. 알게 모르게 힘이 된다. 노출되면 인지도가 올라가고, 체육계 네트워크를 통해 인맥을 넓혀갈 수도 있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증명된 바는 없지만 개연성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명함에 회장 한 줄 파고 다니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책임감이 크다”고 말했다. 나름 애써왔는데 오로지 정치적 목적에서 단체장을 맡는 것처럼 비치는 게 억울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주로 비인기 종목 스포츠단체장들의 불만이다. 사직 권고를 받은 홍문표 대한하키협회 회장은 “후임자를 빨리 찾아라. 2월 중으로 떠나겠다”고 협회에 통보했다. 이학재 대한카누연맹 회장이나 박완주 대한장애인당구협회 회장도 사의를 밝히고 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정치인도 있다. 전병헌 의원은 대한체육회 인정단체인 한국e스포츠협회장이었지만 지체없이 그만뒀고, 우원식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회장은 기업인 후임자를 영입해놓은 뒤 물러났다. 대부분 “후임자 작업이 윤곽을 드러내면 떠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각 협회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새 회장을 영입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집행부 구성으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대한하키협회 집행부는 홍 회장의 사의 표명에 급히 하키인들 3000명의 서명을 받아 정의화 국회의장한테 사퇴 권고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최근 전달했다. 박신흠 하키협회 사무국장은 “남은 임기만이라도 채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사직 권고를 한 국회의장이 입장을 바꿔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홍문표 의원의 경우 2009년 농어촌공사 사장 시절 하키협회장을 겸직한 뒤 지금까지 맡고 있다. 비교적 무난하게 끌고 왔다는 게 중론이다. 하키협회의 한 직원은 “후원사 영입 등 협회 재정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내부 반발이 심하지 않은 사실이 회장의 존재감을 증명한다”고 했다. 대한복싱협회나 대한카누연맹도 마찬가지다. 최희국 복싱협회 사무국장은 “당장 그만두면 진행해왔던 사업이 중단된다. 장윤석 회장은 국제복싱협회 집행위원이기도 한데 집행위원은 겸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회장이 바뀌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했다. 김은석 카누연맹 사무국장은 “회장 공백이 생기면 후원금을 내는 부회장단이 흔들리게 된다. 후임자 물색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해답이 안 보인다”고 답답해했다. 체육계의 ‘정치인 의존증’은 권력에서 나온다. 홍문표 회장이 하키협회 쪽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 이유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라는 배경이 있다. 집권당 의원만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신계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마니아 수준의 배드민턴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4선이라는 관록의 힘이 작용한다. 실제 신 회장은 지난해 한국의 간판 선수인 이용대-김기정 복식조가 도핑 회피로 인한 자격정지 1년 징계를 받았을 때 넓은 법조계 인맥을 동원해 국제배드민턴연맹으로부터 징계 취소 결정을 이끌어내면서 내부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신계륜 의원 보좌관은 “차기 회장을 물색하라고 협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시점은 모른다”고 했다. 스포츠단체장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치다가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표시하는 쪽도 있다. 김태환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그런 사례다. 김태환 의원 보좌관은 “소년체전에 초등부 여자 태권도 부문을 신설했고, 경찰청 태권도팀을 창단했다. 또 중·고교 체육시간에 태권도 시범수업을 위한 예산까지 따냈다. 회장직을 떠나면 이런 사업들이 어려움에 부닥칠 것 같다. 손 떼고 싶어하지만 그순간 올스톱 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한다”고 했다. 대한야구협회의 이병석 회장 보좌관도 “목동야구장을 아마추어 야구의 산실로 쓰기 위한 세부 조건을 서울시와 맞춰야 하고 야구기념관 사업도 걸려 있다. 스포츠토토 지원금도 올해부터는 소요 예산을 신청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집행을 거쳐 받아야 하는데 지금 떠나면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치인 스포츠단체장들의 자업자득이라는 평가도 있다. 윤석용 전임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은 사건·사고의 대명사였다. 협회 직원들에 대한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통제와 독선적인 행정 뿐 아니라 선거판에 직원들까지 동원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한축구협회장에 도전하거나, 조전혁 전 의원이 대한농구협회장에 도전하는 식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스포츠 판에 기웃거리면서 이미지를 실추시킨 측면이 있다. 그야말로 정치적 야심 때문에 추하게 된 경우도 있다.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생활체육회 회장직 ‘겸직 불가’ 통보를 받았음에도 끝까지 자리에 눌러앉으려 하다가 지난달 말 사임했다. 그러나 물러난 뒤에도 후임자 인선에 자기 사람을 배치하려 하면서 진흙탕을 만들고 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큰 방향에서는 정치인 스포츠단체장의 겸직 금지는 맞다. 그러나 협회마다 사정이 다르고 재정 자립에서 영세한 비인기 종목의 경우에는 가림막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좀더 유연한 방식으로 문제가 풀렸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체육인들이 투명한 행정을 펼치고, 스스로 자생성을 갖출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협회장 관련 규정 보완 등으로 정치인의 스포츠단체장 겸직을 강력하게 규제할 방침이어서 올해 안으로는 정치인의 스포츠단체장 겸직은 모두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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