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 않아요. 벗을게요.”
7일 광주시 서구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안에서 만난 아이티의 태권도 국가대표 마르캉송 알티도르(27)는 흩뿌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속의 검은 티를 벗었다. 태권도복의 맵시를 위해서는 벗은 몸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의 경비 지원으로 광주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게 된 알티도르는 이번 대회의 유일한 아이티 선수다.
단장도 없고 코치도 없다. 그래서 단장 모임이나 테크니컬 미팅 때도 직접 나간다. 1인 3역이다. 10일 58㎏급 첫 경기에도 감독이나 코치 없이 혼자 나가 싸워야 한다. 수십명씩 세를 과시하는 한국이나 중국팀을 보면 기가 질릴 것도 같다. 하지만 1m60대의 단신 선수는 속이 꽉 찼다. 알티도르는 “지금까지 코트에서 상대를 겁낸 적이 없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알티도르는 아이티의 페시옹빌 출신으로 2001년 동네 클럽에서 처음 태권도를 접한 뒤 14년 동안 수련해왔다. 그는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이다. 아이티 안에서도 태권도 전국 대회는 1년에 2~3차례 열린다”고 했다. 지난해 열린 전국대회에서 58㎏의 챔피언이 됐다. 하지만 국제 경기에는 출전한 적이 없다. 이번 대회가 첫 국제대회 출전이다. 알티도르는 “태권도의 나라 한국을 방문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루어졌다. 이제 챔피언이 되는 것이 남았다”고 했다.
알티도르가 챔피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수십명이 출전하는데다, 1회전부터 추첨으로 대진을 짜기 때문에 강자와 만날 수도 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기 운영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발차기 모습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알티도르는 “이기지 못하더라도 세계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우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정도 듬뿍 느끼고 있다. 남부대의 최승식 교수는 달랑 태권도복 하나 들고 온 그에게 이날 새로운 도복과 헤드기어, 정강이 보호대, 장갑 등 일체의 용품을 선물했다. 샌들만 신고 다니는 그에게 운동화도 지급된다.
페시옹빌대학 1학년인 알티도르는 조금 늦은 나이에 입학해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하루 2시간씩 태권도 훈련을 한다. 그는 “애인도 없다. 오로지 공부하고 운동만 한다”고 했다. 대학은 무료여서 돈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팝콘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책임감도 느낀다. 한국으로 떠날 때 “보고 싶을 것 같다. 신께 기도할 테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한 어머니는 늘 가슴에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사업가가 돼 돈을 벌고 싶다는 꿈도 어머니 때문이다. 당장은 태권도 입상을 위해 조금의 희망도 버릴 수 없다. 알타도르는 짧은 인터뷰 뒤 남부대체육관에서 예정된 겨루기 훈련을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떴다.
광주/글·사진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