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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잡초보다 강하다…여자유도 희망으로 ‘우뚝’

등록 2015-11-05 15:39수정 2015-11-05 16:55

4일 오전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유도선수 김잔디(가운데) 선수가 서정복 총감독(왼쪽), 이원희 코치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4일 오전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유도선수 김잔디(가운데) 선수가 서정복 총감독(왼쪽), 이원희 코치와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통통스타]
“손가락 밉다고 가꾸려면 유도 그만 둬야죠”
정상 앞에서 매번 좌절…리우에서는 아닐 것
“한판에 끝나요. 순간과의 싸움이죠.”

전광석화처럼 빠른 업어치기 한판을 위해 유도 선수들은 같은 동작을 얼마나 반복할까. “수십만 번은 될 거예요.” 두툼한 옷깃을 잡아당기고, 비틀고, 꺾으면서 손가락은 마디마다 불거졌다. 손아귀 힘을 키우기 위해 악력기를 들고 다니고, 손가락만을 딛고 1회 100개의 팔굽혀펴기를 때로는 하루 10번씩 해도 변형은 막을 수가 없다. “손가락 밉다고요? 곱게 가꾸려면 유도 그만 둬야죠!”

지난주 아부다비 그랜드슬램 57㎏급에서 우승한 김잔디(24·양주시청)의 말이 맵차다. 16강전에서 세계적인 강자인 프랑스의 오톰 파비아를 꺾었고, 결승에서 대만의 1위 리엔천링을 메쳤다. 김잔디는 세계 8위로 국내 여자 선수 가운데 체급별 랭킹이 가장 높다. 8월 카자흐스탄 세계대회 단체전에서는 세계 1위 수미야 도리수렌(몽골)을 누르면서 자신감이 충천하다. 서정복 유도 대표팀 총감독은 “그동안 정상 문턱에서 아쉬움을 삼켰던 잔디가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 내년까지 기세를 끌고 가면 리우올림픽에서 큰 일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4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는 패배로 연결된다. 더욱이 여자 유도는 남자와 달리 선수층이 매우 엷어 세계 최정상 선수를 배출하기가 쉽지 않다. 1992년 바르셀로나 김미정(금), 96년 애틀랜타 조민선(금) 이후 20년간 여자 유도의 올림픽 금메달은 없었다. 하지만 서 감독이 올해 총사령탑을 맡으면서 희망이 넘치고 있다. 서 감독은 송대남, 이원희, 최민호, 조준호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구성된 코치진으로 하여금 남녀 14명의 선수에게 ‘맞춤 훈련’을 하고 있다. 부족한 점을 코치와의 조화로운 배치로 보강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손과 발기술이 좋은 이원희 코치를 잔디에게 붙이기도 하고, 업어치기에 능한 송대남 코치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점의 차이에 따른 코칭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서 감독이 핵심을 짚어주고 골격을 잡는다.

기술이나 체력이 전부는 아니다. 김잔디는 “경기 운영 능력이 중요한 것 같다. 런던 올림픽 때는 이기려는 마음만 급했는데 지금은 코트에 들어가면 휘둘리지 않고 내가 중심인 것처럼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잔디는 2010·2014 아시안게임 은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16강 탈락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서정복 감독도 “정상급 선수들의 기술적 차이는 크지 않다. 자신을 컨트롤할 때 연습 때의 기량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김잔디의 강점은 집중력과 허리다. 이원희 코치는 “머릿속에서 항상 유도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고, 송대남 코치는 “허리의 힘이 뛰어나다”고 김잔디를 칭찬했다. 주 무기도 허리채기다. 틈틈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좋아하는 선수의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1m64의 중간키에 살집도 없지만 뼈는 통뼈로, 16년간 단련된 그의 왼손에 옷깃만 잡히면 거구도 땅에 처박힌다. 김잔디는 “한 번도 시비가 붙은 적은 없지만, 누가 행패를 부린다면 순간적으로 기술이 들어갈 것 같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갔던 학교 유도부. 감독은 “그럼 며칠 해보라”며 시큰둥했지만 김잔디는 매트에서 앞으로, 뒤로 구르면서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공중에서 바닥으로 온몸이 떨어져 고스란히 충격을 받아야 하는 아픔은 달지만은 않다. 오른손 엄지 부분은 파열된 인대를 잇지 못해 흉하게 벌어져 있고, 관절은 모두 통증이 있다.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다. “100%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기술을 보강한다”고 하지만 고운 얼굴 뒤의 그 악전고투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김잔디는 9개월 남은 2016 리우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이미 싸움은 시작됐다. 귀국 이튿날인 4일 시차 후유증을 무릅쓰고 태릉 필승관에서 비지땀을 쏟은 그는 다음 주 대표선발전부터 다시 뛰어야 한다. 이후 국제 대회 일정도 빼곡해 숨 돌릴 틈이 없다. 김잔디는 “올해 연속적으로 대회에 나가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점점 이기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 기분 좋다. 승패는 체력보다는 집념이나 마음가짐 인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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