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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얘들아 운동 재밌니?…“네”

등록 2015-11-11 19:02수정 2015-11-12 11:57

7일 경남 창녕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2015 전국학교스포츠클럽탁구대회 초등부 조별리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복식 선수들이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11월 각지에서 열리는 23개 종목별 초·중·고 전국대회에는 2만여명의 학생이 참가한다. 사진 <월간탁구> 제공
7일 경남 창녕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2015 전국학교스포츠클럽탁구대회 초등부 조별리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복식 선수들이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다. 11월 각지에서 열리는 23개 종목별 초·중·고 전국대회에는 2만여명의 학생이 참가한다. 사진 <월간탁구> 제공
[스포츠 쏙] 뿌리 내린 학교스포츠클럽
“때려!” “그래!” “우와~”

7~8일 경남 창녕군의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2015 전국학교스포츠클럽탁구대회’. 17개 시·도 대표로 나온 초·중등부 선수들은 학원 운동부의 전문 선수들이 아니다. 학교 체육교사의 지도로 클럽 활동을 하다가 나온 학생들이다. 당연히 경기 수준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대결을 지켜보는 지도자와 학부모들, 팀 동료들은 쉴새없이 주문을 내거나 코칭을 하며 환호와 탄식을 연발했다. 프로선수나 국가대표,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에 익숙한 이들이 상상할 수 없던 열기. 그것은 승패가 전부가 아닌 그야말로 즐기는 경기에서, 영혼보다 몸이 먼저 알아챈 육체적 활동에서 나온 기쁨 때문인 것 같았다.

대전광역시 성덕중학교 김정민양의 부모 김향희·양혜라씨는 “중학교에 들어가 클럽 활동을 하더니 시대회에서 1등을 해 전국대회에 나왔다. 탁구를 모르던 아이가 지금은 작은 공을 받아쳐 넘기니 대견하다. 공 하나 들어갈 때마다 긴장돼 숨이 막히지만 성공하면 짜릿하다”고 했다. 부모는 이튿날 8강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집에 갔다가 다시 왔지만, 성덕중학교는 경남의 함성중학교에 져 탈락했다. 선수들은 지면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교사와 부모가 다독이는 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거린다. 외국의 스포츠영화에서나 봤음직한 훈훈한 가족드라마가 우리 일상에 바짝 다가왔다.

이 모든 것은 2008년 시작된 전국학교스포츠클럽대회가 몰고 온 혁신이다. 그 이전까지 초중고 학교에서 이뤄지는 스포츠는 엘리트 선수 육성에 초점이 집중됐다. 국가는 국제대회 성적을 내기 위한 수원지로 학교 운동부를 만들었다. 이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권력은 체육강국이라는 이미지를 팔 수 있어 좋았고, 시민들은 결과에 열광했다. 하지만 1% 미만의 메달리스트를 낳기 위해 희생된 99%의 선수들을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체육인은 “국가가 단물만 쪽 빼먹고 폐기처분했다”며 분노했다.

엘리트 선수 육성 일변도 벗어나
생활체육으로 정부정책 변화 덕분
탁구 등 클럽활동 기회 늘어나자
시·도대회 참가자 수십만명 몰려

8년째 매년 학교스포츠클럽대회
환호·탄식 속 뜨거운 열기 이어져
패배 경험 등 좌절 극복능력 효과
“정부 예산지원 확대 등 뒷받침을”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 ‘일인일기’(一人一技), ‘모두가 즐기는 생활스포츠’ 등을 내세운 정부의 체육정책이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아직도 초·중·고·대학에는 종목별 전문 선수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대한민국의 엘리트 선수로 성장한다. 하지만 과거 ‘운동 기계’로 훈육됐던 전문 선수들도 지금은 수업을 빼먹어서는 안 된다. 초기 단계라 시행착오도 많지만 엘리트의 길을 포기한 선수가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뉴스도 간혹 나온다.

더 큰 변화는 시험이나 입시에 찌든 일반 학생들한테 열린 스포츠 활동 기회다. 학교에서는 체육시간, 방과후 클럽시간, 토요스포츠데이, 창의적 체험활동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스포츠 참여를 유도한다. 교장 선생님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학교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2012년 제정된 학교체육진흥법 10조 1항은 ‘학교의 장은 학생들이 신체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교스포츠클럽을 운영하여 학생들의 체육활동 참여 기회를 확대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는 “정부에서는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 법제 쪽에서는 안민석 국회의원이 학교스포츠클럽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매년 11월 중에 23개 종목별로 개최하는 전국학교스포츠클럽대회는 또하나의 결실을 맺는다. 올해 참여 선수는 총 2만여명인데, 전국대회의 예선전 격인 시나 도 대회 참가 인원은 수십만명에 이른다. 전국대회는 대한체육회가 주관하고, 시도대회는 생활체육회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유경화 대한체육회 학교생활체육부 과장은 “정장을 갖춘 국제심판이나 공인심판이 판정을 하고, 탁구의 경우 게임에 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6~8명의 선수가 한번씩은 뛰도록 했다. 초기와 달리 유니폼을 갖춰 입고 나온 선수들은 진짜 선수가 된 것처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경기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참가한 수내중학교의 김채윤양은 “언니들과 같이 연습하다가 나간 성남시 대회와 경기도 대회에서 우승한 게 믿기지 않았다. 전국대회까지 경험했으니…”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수내중학교는 조별리그 3위로 8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변화는 스포츠가 갖고 있는 근원적 힘 때문이다. 광주광역시 신창중학교 남자팀을 이끌고 온 문성주 체육교사는 “스포츠를 하게 되면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감정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인성이나 스포츠맨십을 키우는 데는 스포츠가 최고”라고 말했다. 허현미 경인여자대학교 교수(레저스포츠)는 “요즘 아이들은 지면 낙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포츠는 지는 경험을 일상화시킨다.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될 여러 좌절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게 된다. 스포츠를 수단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아이들의 인성을 함양하고 폭력성 예방에 큰 도움을 주는 등 교육 효과는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이 학교생활기록부에 반영되는 것도 제도적으로 학생들을 유인하는 장치다.

학원스포츠클럽을 통해서 생활체육의 저변 또한 넓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심판업무를 총괄한 이순주 대한탁구협회 이사는 “어려서부터 탁구를 경험하면 커서도 여가시간에 탁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탁구는 동호회 인구가 많은데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분식 대한탁구협회 과장은 “학교 클럽에서 엘리트 선수가 나오기는 쉽지 않지만, 초등학교 선수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있다면 전문 선수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엘리트 운동부 충원이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학교스포츠클럽을 통해 엘리트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초기 정착 상태여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교육부나 문체부에서의 예산 지원은 초기에 비해 크게 줄었다. 개별 학교의 입장에서는 모든 클럽을 만들 수가 없다. 또 스포츠클럽 활동으로 인한 부상이나, 대회 참가를 위한 이동·숙박 등에도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문용각 수내중 체육교사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해준다는 사명감으로 모든 분들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들이 선수들의 안전 때문에 노심초사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허현미 교수는 “결국은 아이들이 스포츠 복지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교육청이나 학교가 클럽 활동의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날 개회식 때 사회자는 이렇게 물었다. “공부 재밌어요?” 그러자 “아니요!”라는 답이 나왔다. 다시 “탁구 재밌어요?”라고 묻자, “예!”라는 대답이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42만명 이상의 학생들(2014년 교육부 등록 선수)이 참여하는 학교스포츠클럽이 꽃망울을 틔웠다.

창녕/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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