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나눌수록 커진다. 밥과 빵은 징표다.’
2일 안양 한라-사할린팀의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챔피언결정 4차전이 열린 사할린 크리스털 아이스 아레나 앞에는 앳돼 보이는 병사 둘이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밥과 빵을 나눠주고 있었다. 연통이 달린 국방색 밥차 내부의 큼직한 솥에는 메밀과 장조림을 섞어 만든 비빔밥과 차가 따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한국보다 시차가 두 시간 빠른 이곳에서 경기는 저녁 7시에 시작됐다. 섬머타임 실시로 날은 밝았고, 추운 날씨에 입장하지 못한 관중들은 밖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보면서 경기를 즐겼다. 이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게 따뜻한 밥차다.
주걱으로 한움큼 퍼주는 메밀 비빔밥의 재료는 메밀과 약간의 고기 조각이지만 받은 사람들은 흐룻해했다. 한번 먹어봤는데 한국의 장조림 비빔밥 같은 맛이었다. 빵도 준비했는데, 토스트용 빵 하나를 네 조각으로 나눠 한 사람당 두 조각씩 주었다. 거칠고 맛은 없었지만 정을 나누는 마음이 느껴졌다. 보통 군대에 입대하면 1년간 복무를 해야하는데, 배식을 맡은 알렉세이는 무표정하게 배급 임무를 완수했다.
현지의 한인 이주민 후손으로 통역을 도와준 이리나는 “명절이나 축제, 큰 스포츠 행사 때는 주 정부에서 지원을 해 군인들의 밥차가 나온다. 고급스런 음식은 아니지만 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광활한 영토를 지닌 러시아는 2차 세계 대전 때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감수했고, 사회주의 건설 뒤 파국 등을 겪었다. 사할린 옆의 연해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과거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국가주의나 대국주의 경향이 강한 이 나라에서 군인들이 스포츠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밥을 퍼주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글·사진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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