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한라 선수단이 3일 러시아 사할린 크리스털 링크에서 열린 2015~2016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승리해 통산 세번째 정상에 오른 뒤 좋아하고 있다. 안양 한라 제공
종료 2분 전 터진 신상우의 결승골, 이어 종료 20초를 남기고 올린 김기성의 추가포. 1000여 러시아 팬들은 막판 결정타에 침묵했고, 20여 한라 응원단은 목이 터져라 선수단을 응원했다. 3피리어드 종료 버저가 울린 순간, 선수단은 헬멧과 스틱·장갑을 벗어던지고 얼싸안았다.
안양 한라가 3일 러시아 사할린의 크리스털 링크에서 열린 2015~2016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5차전에서 신상훈(1골)-신상우(2골) 형제 투혼과 박우상, 김기성 등의 노련미를 앞세워 사할린팀을 5-3으로 이기고 3승2패 역전극으로 정상에 올랐다. 2010~2011 챔피언이 됐던 한라는 5년 만에 왕좌를 차지했다. 2009~2010 정규·챔피언전 통합우승까지 아시아리그 출범 이후 13년간 세 차례에 걸쳐 패권을 차지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는 한국 아이스하키는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의 파격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실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 상징적인 단면이 안양 한라의 경기력이다. 한 차원 높아진 스틱 워크와 시야, 여유로워진 공격 전개, 기회 때의 총알 스피드까지 한라는 아시아 최정상이었다. 초반부터 거칠게 나온 사할린팀도 영리한 플레이로 약점을 물고 늘어진 한라 선수들한테 넋을 잃었다. 특히 사할린팀에서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다음가는 리그로 알려진 러시아의 케이에이치엘(KHL)을 경험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아시아리그에 참여한 것은 최근이지만 러시아 본토의 막강 선수 자원을 바탕으로 아시아리그 정상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한라는 아시아리그 창단팀의 자존심을 잃지 않고 챔피언의 자격을 실력으로 완성했다.
이날의 승리는 한라 선수들의 신구조화, 편차가 적은 공격진 구성, 수비 강화와 외국인 선수 보강 등이 요인으로 꼽힌다. 박우상·김원중·김기성 등 선배 그룹과 허리를 잇는 조민호, 신진인 신상훈·안진휘·김원준·박진규 등이 호흡을 맞추면서 탄탄한 전력을 일궜다. 신진 선수들은 키는 작지만 빠르고 득점력이 뛰어나다. 상무에서 돌아온 수비의 이돈구나 공격의 조민호도 이름값을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라에는 9~10명이 골을 넣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은 특히 형제 선수로 유명한 신상훈(동생)-신상우(형)가 일을 벌였다. 거친 플레이를 마다않는 사할린팀은 시작 18초 만에 한라의 마이크 테스트위드를 쓰러뜨렸고, 이마에 피를 흘린 테스트위드는 경기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 신상훈이 1피리어드 5분여 만에 이돈구의 도움으로 첫골을 따내 기선을 잡았다. 2피리어드 중반 동점타를 맞아 1-1이 되자, 이번엔 주장 박우상이 골문 앞에서 구석을 찌른 정교한 샷으로 다시 달아났고, 신상우의 추가골로 3-1로 간격을 벌였다. 위기는 3피리어드. 사할린은 9분, 12분여께 추격포를 터뜨려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때 등장한 신상우가 동생 상훈과 김기성의 더블 어시스트를 받아 결승점(4-3)을 뽑아냈고, 종료를 앞두고 골키퍼 대신 필드 플레이어를 투입해 총공세를 편 사할린의 배후를 김기성이 단독으로 파고들어 쐐기골을 넣으면서 승패는 완전히 갈렸다.
한라는 평창겨울올림픽을 대비해 외국인 선수를 많이 귀화시켰는데, 태극마크를 단 골리 맷 달튼과 브락 라던스키, 에릭 리건, 마이크 테스트위드가 정상에 오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현장에서 선수들을 격려한 정몽원 아이스하키협회장은 “1승2패의 어려운 상황에서 원정 역전극을 이끈 것은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투혼이었다. 1-1, 3-3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우리 선수들의 역량이 그만큼 올라온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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