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이 25일 오후 광주 남부대학교에서 열린 제88회 동아수영대회 남자 일반부 자유형 1500m 결승에 출전해 힘껏 헤엄치고 있다. ‘도핑 파문’ 이후 복귀 경기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100m·200m·400m·1500m 등 네 종목에 출전한다. 광주/연합뉴스
동아수영 자유형 1500미터 1위
2천여 팬, 마린보이 박수로 맞아
전성기 못미치지만 괴력 여전
리우올림픽 본선행 기록 넘어서
대한체육회 규정상 출전은 못해
2천여 팬, 마린보이 박수로 맞아
전성기 못미치지만 괴력 여전
리우올림픽 본선행 기록 넘어서
대한체육회 규정상 출전은 못해
15분10초95.
1500m를 1위로 통과한 뒤 전광판을 확인한 박태환(27)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곧바로 옆 레인으로 잠수한 뒤 플랫폼으로 올라섰고, 2천여 팬들은 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올림픽 영웅으로 팬들에게 희열을 안겼다가 도핑으로 한순간에 나락에 빠진 청년. 푸른 물살을 가르며 유유하게 유영하는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담은 팬들은 ‘언제 또 볼 수 있을까’라는 아쉬움을 곱씹는 듯했다.
박태환이 25일 광주 남부대 국제수영장에서 열린 88회 동아수영대회 겸 국가대표선발전 남자 일반부 자유형 1500m 결승에서 15분10초95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도핑 파문 이후 18개월 만에 갖는 복귀전. 박태환은 최근 2년간 출전 기록이 없어 불리한 7레인에 자리잡았고 초반에는 바로 옆의 박석현과 호흡을 맞추듯 비슷하게 나갔다. 하지만 550m 지점부터 1위로 치고 나왔고, 특히 마지막 50m 구간(26초93)에서는 올 시즌 자유형 1500m 세계 1위인 맥 호턴(호주)의 마지막 50m 구간 기록(27초36)보다 빨랐다.
15분10초95는 박태환의 전성기 기록은 아니다. 이날 전광판에 새겨진 자신의 한국기록(14분47초38)에 못 미치고, 쑨양(중국)의 아시아·세계기록(14분31초02)과 차이가 난다. 열심히 준비한 400m를 앞두고 1500m에 출전한 것은 자존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박인호씨는 “체력 소모가 크다. 27일 주종목 400m를 앞두고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나”라며 말렸다고 한다. 참가 신청을 하고도 출전하지 않으면 벌금 2만원이면 된다. 하지만 박태환이 “나가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소속사인 팀지엠피 관계자는 “부담이 있었지만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페이스도 조절하고 적응하기 위해 출전했다”고 말했다.
팬들은 박태환을 조용하게 지켜봤다. 두번의 긴팔 스트로크를 할 때 한번의 발차기를 ‘따당’ 하는 모습에서 물살은 많이 튀지 않았다. 슈퍼스타의 영법은 이날 기록이 올림픽출전 A기록(15분14초77)을 넘어선 것에서 드러난다. A기록은 리우올림픽 본선행 티켓이다. 2등 박석현(전주시청·15분25초77)은 올림픽출전 B기록(15분46초79)에 들었지만 올림픽에 가려면 초청을 받아야 한다. 체력을 아끼면서 물살을 헤친 박태환의 괴력을 방증한다.
그러나 그는 올림픽에 갈 수 없다. 대한체육회 규정은 도핑 징계를 받은 선수가 징계를 마친 뒤 3년 동안 대표팀에 선발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1년 이것을 이중 처벌이라며 각국 올림픽위원회에 금지 권고를 내렸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1시간 단위로 3개월치의 소재지 정보를 보고하고, 자택을 불시로 방문한 외국인 검사관들에게 오줌 시료를 내주는 등 도핑 노이로제가 걸릴 뻔했던 박태환. 그는 일단 법률적으로 고의적인 도핑 혐의는 벗었고 국제수영연맹의 징계도 지난달 끝났다. 하지만 규정 개정 권한을 갖고 있는 대한체육회 공정위원회는 특정 선수를 위해 룰을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400m 금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200m 은메달을 딴 박태환으로서도 어찌해볼 수 없는 장벽이다.
현장의 분위기는 박태환에 대한 격려가 주를 이뤘다. 경기장 안팎으로는 박태환 응원 플래카드가 많이 걸렸다. 이날 박태환의 수영 동영상을 찍은 30대 여성은 “아들이 꼭 찍어달라고 했다. 도핑이야 잘못이지만, 이중 처벌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날 고교생 선수를 1500m에 내보낸 서울 브이(V)팀의 주기영 코치는 “하루라도 거르면 감을 잊어버리는 게 수영이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감을 잊을까 2박3일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다. 멘털적으로 힘들었을 선수가 매일같이 훈련한 것은 오기가 아닌가 한다”고 했다.
박태환에 앞서 열린 고등부, 대학부의 1500m 장거리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풀장에서 곧바로 나오지 못했다. 한체대 김동기 선수는 “마지막 바퀴를 돌아 들어오면 머리와 온몸이 부서질 것 같다. 물속에서 조금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박태환은 곧바로 뛰쳐나와 큰 수건을 손에 들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신경을 쓴 200m, 가장 신경을 쓴 주종목 400m는 26일, 27일 열린다.
광주/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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