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달장애 어린이가 경기도 과천 렛츠런파크에서 열리는 재활승마 강습에 참여한 모습. 한국마사회 제공
8살 승준(가명)이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또래에 비해 언어 발달이 느려서 낯선 사람들과 소통이 쉽지 않다. 그런 승준이가 1주일 내내 기다리는 날이 있다. 경기도 과천 렛츠런파크로 가는 일요일이다. 승준이 아빠는 “의사 선생님 권유로 재활승마를 시작했는데 아이가 지금은 1주일 내내 말 타러 가자고 조른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29일 렛츠런파크를 찾은 승준이는 동생 영준(6)이와 함께였다. 이날은 기승하지 않고 말 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승준이는 ‘맑음이’(말 이름) 배 위에 그림을 그리는 데 한참이나 주저했지만 동생 영준이가 먼저 용기를 내자 승준이도 힘을 얻었는지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말 등에 찍는 등 맑음이와 마음의 거리를 점점 좁혀갔다. 권진현(51) 한국마사회 승마힐링센터 수석코치는 “재활승마는 단순히 말만 타지 않는다. 말 등에 그림을 그리고, 말에게 먹이를 주고 씻겨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말과 교감하고 더불어 상처받고 닫힌 마음을 치유해나간다”고 했다. 말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셈이다.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가을(9월17일~11월21일)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 정규 프로그램으로 재활승마 강습을 하고 있다. 주 4일, 하루 30분씩, 학기당 8차례 교육을 한다. 자폐증, 뇌 손상, 다운증후군, 발달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학습장애 등이 있는 어린이(6~13살)만 대상으로 했다가 2학기부터 몸무게 70㎏ 미만의 장애 청소년, 성인(주 2회)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2학기가 진행 중인 현재 64명의 참가자가 재활승마를 경험했고, 3학기는 여름학기(7월21일 시작)로 30명 모집이 이미 마감됐다. 부모 만족도 조사 결과 재활승마는 평균 88점의 높은 호응도를 얻었다.
장애 종류에 따라 재활승마 지도법은 달라진다. 경증, 중증 증상별로 말에 태울 수 없는 아이도 있어 재활승마 강습을 받으려면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 간질 등의 증세가 있어도 안 된다. 참가자별로 타는 말의 종류가 다르고 신체 상황에 따라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고삐가 사용되는 등 고삐도 천차만별이다. 안장 없이 말을 타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국제재활승마협회 어드밴스드 지도자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 수석코치는 “말에 올라 타면 상체와 다리는 분리돼 움직이고 시선은 앞으로 향하되 귀는 열려 있어야만 한다. 승마는 오감을 다 활용하는 전신 운동”이라며 “처음에는 말 타기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 지르던 아이들도 일단 말 등에 올라타면 조용해지고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워~’라는 말 한마디에 말이 멈출 때 아이들은 성취감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언어 발달이 늦은 승준(가명)이가 재활승마 한 과정으로 말 등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김양희 기자
마사회 쪽에 의하면 실제로 재활승마를 통해 두 달 만에 언어능력이 26%가량 향상된 아이도 있고 척추측만증으로 혼자서는 잘 걷지 못하던 아이가 조금씩 걷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권 수석코치는 “자전거도 못 탔던 장애 아이가 최근 열린 소년체전 승마 종목에 출전한 사례도 있다. 재활승마가 직접적 치료 방법은 아니지만 기승자의 의지에 따라 상태가 호전될 수는 있다”고 했다. 마사회는 서울에 이어 부산, 원당, 제주까지도 점진적으로 재활승마 강습을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재활승마 지도자 양성 교육도 하고 있다.
재활승마에는 기본적으로 코치 1명과 자원봉사자 3명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말을 탈 수 없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반드시 자원봉사자가 옆에서 도와줘야만 한다. 아이의 변화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기록하기 위해 한 강습자에게는 매주 같은 자원봉사자가 배정된다. 이날 충남 보령에서 올라와 남편과 함께 승준이를 도와준 김정은(41)씨는 “처음에는 승준이가 손도 안 잡으려 했지만 지금은 먼저 다가와서 손을 잡으려고 한다. 주말 2시간씩 봉사를 하는데 나 또한 마음이 힐링돼 집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재활승마 자원봉사자는 현재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자원봉사 지원 자격은 전혀 없으니까 고등학생 등 재능기부 참여자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날 승준이는 자신의 손바닥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말에게 직접 먹이는 등 서서히 세상을 향한 마음속 빗장을 풀어갔다. 그리고 아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빠와 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승준이는 그날, 맑음이 꿈을 꾸지 않았을까.
과천/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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