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이 17일 오전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서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어젯밤에도 나왔어요.”
17일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아들 박태환(27)이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미국 올랜도행 출국 수속을 밟고 있을 때, 한쪽에서 아들을 지켜보던 아버지 박인호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호주 전지훈련장에서 귀국해 15, 16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맹훈련한 아들이 16일 밤 집에서 쉬고 있을 때다. 국제반도핑기구 사람이 자택으로 들이닥쳤다. “도핑이라는 게 그래요. 시도 때도 없이 나와요.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고. 새벽에 나올 때도 있어요.” 아버지는 도핑 징계로 지난 2년간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한 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10여년을 그런 압박과 훈련 속에서 살아왔어요. 그래서 이제는 수영을 내려놔도 좋으련만, 안 들어요. 내 아들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태환은 이날 2016 리우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국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미국 올랜도에서 시차적응과 막바지 훈련을 한 뒤 현지시각 31일 리우에 입성한다. 2014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18개월 도핑으로 인한 자격정지 징계, 이후 5개월간 대한체육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 등 국제 스포츠 기구에서 진즉에 폐기한 도핑 이중처벌을 고수하면서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그을린 얼굴의 박태환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출국장에 섰다.
“(리우 출전이 결정되지 않아)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이 많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수영하면서 마음을 조절하고,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했다. 불안감과 걱정에 가슴 졸이는 순간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준비했고 훈련한 게 잘 나오기만 바란다. 메달 욕심을 내다 보면 긴장해서 안 좋아질 수 있어 (욕심은) 내려놓고 레이스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입은 티셔츠에는 의미심장한 글귀가 박혀 있었다. 불가에서 속세의 번뇌를 해탈한 경지를 뜻하는 니르바나(NIRVANA·열반)다. 박태환은 이날 “내려놓는다” “메달보다는 훈련했던 것이 잘 나오기를 바란다” “귀국 때 뭐 하나라도 걸고 오면 좋겠다”는 식으로 직접적인 욕망을 삼갔다. 기자는 “메달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리우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는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나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박태환은 이 대목에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수영이다. 그래서 수영을 한다”고 답했다. 누나 박인미씨는 “정신적으로 흔들려도 훈련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훈련에 집중할 시간을 놓친 것은 아쉽지만, 동생은 경기에 나갈 때 자신감을 갖고 나간다”고 했다.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이 17일 오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리우올림픽 자유형 100·200·400·1500m 네 종목에 출전하는 박태환의 가장 큰 약점은 훈련량 부족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8월6일 개막일까지 20일 정도다. 이 때문에 그동안 경험 속에서 얻은 올림픽 노하우를 활용해 자신의 몸 상태를 경기에 맞춰 최고조로 끌어올려야 한다. 노민상 전 대표팀 감독은 “태환이 전담팀과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조언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인 지도자 덩컨 토드와 호주 대표선수 출신 로버트 헐리(28)의 동행은 큰 힘이다. 헐리는 2009년 로마 세계대회 자유형 400m 예선 등에서 박태환과 경쟁했던 선수로 박태환의 훈련 파트너가 됐다. 박태환은 “헐리는 이전에 잘 알던 선수로 함께 훈련도 했다. 레이스 파트너가 같이 가는 것 자체가 장점이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팬들에 대한 인사도 전했다. 박태환은 “마지막 준비를 잘 해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겠다. 4년 전 런던올림픽을 준비할 때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힘들게 나가게 된 올림픽이니만큼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다”며 출국 검색대로 향했다.
영종도/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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