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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현 “맘속 신의 가르침을 받다니…신기해요”

등록 2016-07-26 18:09수정 2016-07-26 22:06

[내일은 우리가 주인공]
(5) 여중 유도최강자 아현이, 김미정 만나다

메달리스트 김미정 교수 만나 궁금증 풀어
“유도는 자유의 공간, 네 꿈을 펼쳐 봐”
바르셀로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미정(왼쪽) 용인대 교수가 25일 무도대학 4층 유도장에서 정아현에게 잡기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바르셀로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미정(왼쪽) 용인대 교수가 25일 무도대학 4층 유도장에서 정아현에게 잡기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너무 보고 싶었어요.”(정아현 선수)

“내가 누군지 알아?”(김미정 교수)

“알아요.”(정아현 선수)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하”(김미정 교수)

바르셀로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미정(왼쪽) 용인대 교수가 25일 무도대학 4층 유도장에서 정아현과 다정하게 포즈를 잡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바르셀로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미정(왼쪽) 용인대 교수가 25일 무도대학 4층 유도장에서 정아현과 다정하게 포즈를 잡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중학 2학년 유도 선수. 마음속의 영웅, 아니 마음속의 신을 앞에 둔 선수의 기분은 어떨까. 속이 꽉 찬 옥수수처럼 야무진 아이는 “좋아요”라고 한다. 하지만 표정은 굳었다. 준비해온 질문지를 펴지도 못한다. 엄마뻘 되는 김미정(45) 용인대 교수가 푸근하게 말을 걸자 그때서야 확 펴진다. 여자 중등부 유도 최강자 정아현(14·전북체중 2). 그가 씩씩하게 묻는다. “선생님, 유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어요?”

25일 경기도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4층 김미정 교수 연구실은 화기애애했다. 월드비전에서 후원하는 유망주 정아현은 눈을 내린 채 묵묵히 듣고만 있었지만 토씨 하나라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유도는 정말 힘든 운동이지. 그러니까 하기 싫을 때도 있을 거야. 그런데 포기하는 순간 지는 거지. 그러니까 힘들 때 중심을 잡아주는 자기 주관이 확실하게 있어야 해.” 김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유도는 어떻게 시작했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유도를 한 아현은 “언니 따라 하다가 입문했다”고 답했다. “재미있어?”라는 질문엔 “한판으로 넘어뜨릴 때 신난다”고 했다.

정아현은 올해 춘계·하계 전국유도연맹전과 소년체전 여자 유도 52㎏급에서 우승한 기대주다. 5월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소년체전에서는 지난해 패배를 안겼던 중학 랭킹 1위를 유효로 따돌리고 설욕했다. 손마디는 아직도 여리고, 외형상 근육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잡아채는 손의 악력이 좋고, 승부욕이 강하다. 매트 위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동급생 4명과의 기숙사 생활이나 꽉 짜인 훈련 스케줄이 아현한테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김 교수는 “아현이가 이겼을 때 기쁨을 느끼는 것은 힘든 경험을 한 뒤 얻은 성취 때문일 거야. 고생 끝에 보람이 오는 거지, 고생도 안 하고 우승하면 뭔가 께름칙하잖아. 그런 어려움을 잘 넘어가기 위해서는 작지만 하나씩 목표를 잡아 나가면 돼. 이런 게 습관이 되면 아마 꿈은 갈수록 커질 거야”라며 힘을 북돋아준다. 아현은 “매번 1등을 하고 싶다. 이제는 전국체전 우승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했다. 전국체전은 고교생들이 출전하니 앞으로 고교 정상을 목표로 잡은 듯하다. 그다음은 아마도 국내 최강자, 대표선수, 올림픽 출전 식일 것이다.

김 교수는 “마음가짐은 몸을 지배한다”고 했다. 극한 상황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힘이 아닌 정신이라는 얘기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 선발전일 거야. 1·2차전에서 1등 했지만 마지막 3차전에서도 1등을 해야 됐어. 그런데 오른쪽 어깨가 빠지고, 왼쪽 가운뎃손가락은 굽지도 않았지. 의사가 딱 한 번이라며 진통제를 놔줘 경기에 들어갔어. 그런데 상대 선수의 코치가 ‘김미정 오른팔 망가졌어’라는 말을 하는 거야. 평소 친했던 지도자의 그 말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김 교수는 겨드랑이 위로 들어 올리지도 못하는 오른팔로 상대를 메다꽂은 전설적인 얘기를 ‘정신의 힘’의 일례로 들었다. 표정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냉정한 아현도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 깨달은 듯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미정(오른쪽) 용인대 교수가 25일 무도대학 4층 연구실에서 정아현과 얘기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미정(오른쪽) 용인대 교수가 25일 무도대학 4층 연구실에서 정아현과 얘기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아현은 사춘기다. 지금까지는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운동을 하고, 오전 수업을 듣고 오후 훈련을 통해 중학교 최정상에 섰다. 저녁 휴식 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한다. 개인시간은 부족하지만 버텨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뭐라 할 수 없는 불만이 있다. 아현과 고교에 다니는 언니 둘까지 셋을 힘겹게 뒷바라지 하는 홀어머니도 애를 많이 쓴다. 김 교수와의 만남이 혹시 돌파구가 될까. 모처럼 멀리서 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 없는 김 교수가 원 포인트 레슨을 제안한다.

도복으로 갈아입은 둘이 연구실 바로 옆의 도장에 섰다. “주 기술이 뭐야?”라고 김 교수가 묻자, 아현은 “업어치기”라고 한다. 왼쪽 허리후리기도 장기라고 했다. 그러자 김 교수는 “어차피 경기에 나가서 쓸 수 있는 기술은 한두 가지다. 여러 개보다 하나의 주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 주 무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속여야 한다. “주 무기를 쓸 수 있도록 발기술과 몸놀림 등 서브 기술을 연마해야 해”, “가장 중요한 기본 기술은 잡기야. 잡아야 뭘 해볼 거 아냐. 그다음이 기술이야”, “나만의 잡기가 있어야 해, 잡기가 없으면 넘어지는 것도 무의미해”. 김 교수의 기술 지도가 뇌리에 팍팍 꽂힌다.

아현도 신바람이 났는지 업어치기 동작을 취할 땐 제법 빠르게 몸을 튼다. 몸을 부닥치면 마음도 통한다. 한여름 텅 빈 도장은 둘의 움직임에 꽉 차 보인다. 김 교수는 “코치가 아무리 뭐라 해도 시합장에 들어가면 모든 것은 아현한테 달려 있어. 아현이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의 공간이야. 그 순간 이기면 더 좋지 않겠어”라며 어깨를 두드린다. 귀염성 있는 아현도 “신기해요. 이렇게 직접 만나서 지도를 받다니…”라며 밝게 웃는다.

용인/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유도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아현이를 후원하고 싶은 독자는 월드비전 누리집(www.worldvision.or.kr)을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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