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평창겨울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인 2016~2017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가 펼쳐진 강릉아이스아레나. 이 경기장은 수영장과 빙상장, 체육관으로 사후활용이 되지만 남자아이스하키장과 400m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대책이 마땅치 않아 강원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2018 평창겨울올림픽 사후활용 재앙이 현실화하고 있다. 애초 해체하려다 존치로 방향을 튼 400m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과 남자아이스하키장이 문제다. 뚜렷한 계획이 없거나, 임시방편의 대안조차 표류하고 있다. 수도권 시설 활용 등 타 지역 분산 개최안을 묵살한 대통령의 고집이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낙마로 그나마 추진 중이던 사후활용 대책마저 표류하고 있다.
■ 400m 스피드스케이팅 애물단지 될라 400m 스피드스케이트장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선수들이 사용하거나, 빙상 대회용으로 쓰이는 전문 시설인데, 사실상 활용도는 크게 떨어진다. 문체부는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 훈련장에 스피드스케이팅장을 짓기로 했던 계획을 철회해, 강릉의 스피드스케이팅장 활용도를 높이려고 했다. 하지만 빙상 경기인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태릉은 수도권에 집중한 빙상팀들이 이용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차로 3~4시간을 이동해 사용해야 하는 강릉의 400m 스피드스케이트장과 비교할 때 접근성은 하늘과 땅 차이다. 철거하기로 했다가 올해 일방적으로 존치하기로 결정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도 “김종 전 차관이 태릉빙상장을 없애겠다고 말하면서 빙상인들이 분노한 측면이 크다. 문화재청이 태릉을 왕릉으로 복원하더라도 스케이트장 등 일부 시설은 근대 문화스포츠 유산으로 존속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강릉 400m 스피드스케이팅장의 연간 유지·관리비를 30억원으로 추정했고, 수익은 5억6000만원으로 계산한 바 있다. 여타 경기장을 포함해 강원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스케이팅장 시설을 유지하면서도, 체육관이나 전시장, 보관창고 등 다양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 대명 “남자아이스하키장 못 맡는다” 강릉 남자아이스하키장은 1만석 규모의 국내 최대 시설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남자아이스하키장의 유지·관리비를 2012년 당시 연간 19억5000만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문체부와 강원도가 애초 계획과 달리 올해 이 시설을 존치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리조트·호텔 사업자인 대명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대명이 올림픽 이후 최소 3~5년간 아이스하키장 기능을 살리면서 운영을 맡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대명은 자체 아이스하키팀의 홈구장으로 경기장을 사용하고, 강원 지역을 찾는 고객을 유인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을 구상한 바 있다.
하지만 김종 차관이 구속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명그룹 내부에서는 겨울올림픽 시설을 떠맡는 게 자칫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돼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실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겨울올림픽에서도 이권을 노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애초 문체부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워 아이스하키장 운영을 맡기로 했지만, 기업 내부의 반대 등을 계기로 이번 기회에 위탁 운영을 포기하려는 인상도 엿보인다.
대명 쪽 관계자는 “아이스하키장 영업을 해도 경쟁 빙상장이 너무 많다.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온다”고 했다. 반면 강원도 관계자는 “대명이 완전히 손을 떼지 않았다. 계속 협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어차피 국고 지원이 필요하다. 그것이 어렵다면 스포츠토토 대상 종목에 아이스하키를 넣어 일정한 재원을 확보하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 슬라이딩센터, 알파인 할강장도 난제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루지 경기가 열리는 슬라이딩센터는 사후활용도가 가장 떨어진다. 그러나 사후활용 대책은 사실상 없다. 여름철 바퀴 달린 썰매장으로 개조한다고 해도, 1300억원 가까운 돈이 들어간 이 시설은 폐물이 되기 쉽다. 시설 유지 비용은 연간 31억원 수준이다. 사후활용이 가능한 중봉의 알파인 활강경기장은 대회 이후 복원이 발목을 잡고 있다. 경기 뒤 코스의 55%를 복토할 경우 스키장으로 사용하기는 불가능하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스키장의 경우 연간 29억원의 관리비가 들어가지만, 23억원의 수익이 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는 “올림픽 사후활용 재앙은 분산 개최를 받아들이지 않은 대통령과 강원도에 책임이 있다. 올림픽 유산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림픽이 시민들의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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