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스스케이팅 매스 스타트 최강자인 김보름(왼쪽)과 이승훈이 12월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포즈를 잡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절대 속도의 싸움이다. 막판 한 바퀴에서 결정된다.”
스피드스케이팅 매스 스타트 남녀 세계 순위 1위 이승훈(29·대한항공)과 김보름(24·강원도청)은 막판 스퍼트에서 승패가 갈린다고 했다. 400m 트랙을 16바퀴 돌아 승자를 가리는 집단 경쟁은 쇼트트랙의 자리 다툼과 스피드스케이팅의 속도를 가미해 흥미를 높인 겨울올림픽 새 종목이다. 별칭도 ‘빙속의 쇼트트랙’이다. 롱스케이트를 타고 15바퀴까지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인 뒤, 마지막 한 바퀴에서 폭풍 질주가 이뤄진다. “우린 쇼트트랙을 했다. 경기 운영에선 우리가 앞선다.”(이승훈, 김보름)
네덜란드 등 유럽의 스피드 강국 출신 선수들은 레이스 내내 체력으로 밀어붙인다. 그 페이스에 휘말려서는 절대 안 된다. 김보름은 “선두와 너무 떨어져도 안 된다. 결국 마지막 1~2바퀴에서 판가름이 나는데 그때 아껴두었던 에너지를 100% 폭발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승훈은 그 순간을 “절대 속도의 경지”라고 했다. 이승훈이나 김보름이 막판 5명 이상의 선수를 제치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는 번개가 따로 없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반발짝 더 빨리 치고 나갈 수 있는 비밀은 쇼트트랙에서 터득한 노하우. 한국체육대학 쇼트트랙경기장에서 훈련하는 이승훈은 “여름훈련 때도 쇼트트랙에서 훈련을 한다. 111.2m 쇼트트랙 코스를 전속력으로 질주하거나, 속도를 정해놓고 10번을 반복하면서 순간 스피드에 대한 감을 높인다”고 했다. 역시 쇼트트랙을 거쳐 매스 스타트 세계 1위가 된 김보름도 “쇼트트랙을 탔기 때문에 여러 명이 출발해 순위 경쟁을 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코너를 돌 때의 기술이나, 추월 여부 판단에도 쇼트트랙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물론 체력훈련은 기본이다. 하체를 강화하고, 복근과 상체를 다듬어야 한다.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훈련하는 둘이 한여름에도 빙상장 앞 도로 트랙을 헐떡거리며 달리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체력훈련은 쇼트트랙 코스를 주행하는 것이다. 검은 스타킹으로도 가릴 수 없는 무릎 위의 불룩한 근육은 스케이팅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는데, 터질 듯이 팽팽하다.
기술은 레인 네 곳의 회전 구간에서 이뤄진다. 김보름은 “시선은 앞의 선두 그룹에 두면서 빈곳을 파고들며 유리한 위치를 잡는다. 그러면 코너를 나오면서 상대를 추월할 수 있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승훈(왼쪽)과 김보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매스 스타트는 집단적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스피드스케이팅 대회 때 사용하지 않는 연습 레인도 경기장으로 쓴다. 400m보다 짧은 거리를 돌기 위해서 바짝 레인에 몰려든다. 이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승훈은 “스케이트 날이 부닥치면 큰 문제가 생긴다. 넘어지지 않더라도 날이 모래알만큼이라도 파이면 레이스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선수들의 감각은 워낙 예민해서, 날에 조금의 변화가 생겨도 원하는 질주 방향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고 느낀다.
세계 정상급 남자 선수들은 초반부터 그룹이 나뉘어진다. 반면 여자 선수들은 한 무리를 이뤄 막판까지 달린다. 중간에 선수들 사이의 작전은 수시로 들어간다. 하지만 코치진의 지시보다는 선수들의 임기응변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이승훈은 “대개 선수들은 서로를 알고 있다. 스타일도 다 파악하고 있다. 상대가 전혀 상상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작전을 쓸 때 잘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면 60점을 받는다. 중간에 4바퀴, 8바퀴, 12바퀴를 돌았을 때 중간 점수가 1등(5점), 2등(3점), 3등(1점)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금메달은 마지막에 갈린다. 둘은 “결국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해야 금메달을 딴다. 마지막 한 바퀴에 모든 것을 걸고 레이스를 한다”고 했다.
2016~2017 시즌 열린 4차례 월드컵에서 이승훈(금1, 은1, 동1)과 김보름(금2, 동2)은 항상 선두권이었다. 2월9일 강원도 강릉에서 예정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와 그 뒤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겨울아시안게임은 올림픽을 앞두고 치르는 가장 중요한 경기다.
이승훈과 김보름은 “지금까지의 월드컵은 연습 무대였다. 진짜 경쟁은 테스트 이벤트와 아시안게임에서 이뤄진다. 올림픽 직전에 하는 가장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이승훈의 날카로운 눈매에는 자신감이 드러났고,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김보름의 눈은 레이저처럼 강렬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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