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13일 40대 집행부 임원 인사 중 태릉선수촌장에 공무원 출신 이재근 경북체육회 사무처장을 내정한 것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9월 진천선수천 2단계 건립이 끝나면 선수촌병원과 의과학센터 건립, 규모가 커진 자산관리 등 복잡한 행정수요가 늘어난다. 경기인들의 불만이 있는 것은 알지만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해 이 사무처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또 “선수촌 초기 역사에도 행정가가 선수촌장을 맡은 적이 많다. 행정 전문가를 기용함에 따라 부촌장은 경기인 출신으로 채워 선수촌 행정과 선수관리 업무를 분담해 이끌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인들의 반발은 거세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실업팀을 이끌고 있는 한 감독은 “행정은 선수촌장보다 그 윗선에서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선수촌장은 선수들과 호흡하면서 애로사항이나 불편함을 들어 체육회에 전달하거나, 선수들을 들여다보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선수들한테 경기인 출신이 정서적으로 훨씬 가깝기도 하다”고 했다.
물론 행정가가 못할 이유도 없고, 경기인 출신이 잘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동안 일부 촌장은 정치의 뒷배와 체육회장의 연줄 등에 힙입거나, 스타 출신이기에 촌장의 자리에 오른 경우가 있다. 행정 전문가들이 비전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과 달리, 경기인 출신 촌장은 체육인의 입장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선수촌장은 경기인에게는 상징성이 크다. 한 경기인은 “선수촌장은 체육인의 마지막 보루이고, 최후의 자존심이다. 공모를 통해 경기인을 부촌장으로 영입한다는 게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국가대표 감독 출신으로 현재 외국에서 코칭 자문을 하는 체육인은 “행정 전문가가 큰 틀에서 더 나을 수 있지만 자칫 정치에 체육이 휩쓸릴 수 있다. 대한체육회가 김종 차관 시절 맥없이 무너져도 유일하게 힘을 발휘한 곳이 태릉의 국가대표지도자회의다. 앞으로 이들의 태도가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트 체육의 성지인 태릉선수촌에는 1985년 비경기인 출신의 고 김집씨가 훈련원장으로 선수촌 총책임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고 김성집씨가 선수훈련단장을 맡아 사실상 관리했다. 김성집씨는 1974년부터 1990년까지 훈련단장을 맡았다. 때문에 근 40년 만에 비경기인 출신의 선수촌장 등장이 주는 충격은 큰 편이다.
이기흥 회장은 비교적 큰 그림을 그리며 집행부를 구성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관치의 그늘에서 탈피해 체육회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재정 자립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평창의 성공과 스포츠 외교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태릉선수촌장에 비경기인을 내정한 것은 강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체육회는 1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첫 이사회를 열어 선수촌장 내정자에 대한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