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변신하면서 출장 수, 가로채기, 도움주기 부문에서 대기록을 세운 주희정이 지난 14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오리온과의 경기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제공
“그냥 된 건 없어요. 늘 목표를 세우죠.”
걷다 보니 저절로 정상에 오른 게 아니었다. 남들은 모르는 자기만의 목표. 그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오른 전략이었다.
프로농구 삼성의 걸어다니는 기록제조기 주희정(40). 지금은 식스맨으로 벤치를 달구는 시간이 많다. 올 시즌엔 부산에서 열리는 프로농구 올스타전(23일)을 집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우울하지 않다. “모처럼 아이들하고 놀아줄 시간이 생겼다. 고생한 집사람 도와줘서 좋고요.” 그렇다. 늘 삶은 긍정적이고, 시간은 그의 편이다.
이번 시즌엔 프로농구 사상 첫 1000경기 출장, 1500가로채기, 5355도움주기 등 세 개의 영역에서 대기록을 세웠다. 모두 최초인데 2위와의 격차가 커서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출장 기록을 쫓아오는 현역 선수는 김주성(600여 경기) 정도다. 가로채기 부문도 역대 2위(김승현 917개)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현역 선수 중 도움주기 4000개를 넘은 이도 없다.
끈기와 스피드는 타고났다. 외국인 선수를 보면서 잘하는 점을 배웠다. 가로채기 할 때는 힘으로 달라붙었으나 지금은 요령으로 한다. 그는 “공격적인 농구는 일대일 싸움이 아니라 5 대 5 싸움이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공격의 길목을 노린다. 공이 없는 쪽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머릿속에는 늘 가로채기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공격을 하는 듯 멈추고, 쉬는 듯하면서 공격하는 강약 조절로 각 부문의 기록 고지에 올라섰다.
기록 제조가 가능했던 것은 비교적 일찍 프로에 입문한 덕도 있다. 하지만 집념과 승부욕 등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더 크다. 그는 “여러 기록에서 최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늘 간절한 마음으로 뛰었다”고 했다. 상대 가드와의 개인 기록 비교에서 뒤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는 “경기 중에 의식하면서 뛰니 머릿속이 숫자로 복잡해질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부상 없이 달려온 것은 운이다. 고려대 중퇴 이후 연습생(월급 150만원)으로 나래 블루버드에 들어가 1997~1998 시즌부터 출장한 것도 성공 가도의 배경이 됐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돌봐주던 할머니가 도와주신 것 같다. 어렵게 살면서도 할머니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떠놓고 손자를 위해 정성스럽게 빌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2001년 돌아가셨다.
주희정의 아내와 네명의 자녀가 지난달 30일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1000경기 출장 시상식에서 밝게 웃고 있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제공
‘바람의 아들’, ‘테크노 가드’, ‘에너자이저’, ‘주키드’ 등 다양한 별명은 그의 변신 능력을 보여준다. 특유의 스피드 농구에서 현란한 패스 기술로, 줄기차게 뛰는 운동량과 미국의 제이슨 키드처럼 득점력과 튄공잡기 능력을 과시하는 데까지 변화를 주어왔다. 그는 프로농구 최초로 머리에 염색한 선수이기도 하다. “내성적인 성격으로는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막내가 머리에 염색하고 당돌하게 코트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깜짝 놀랐다. 다행히 귀엽게 봐주면서 그 뒤부터는 염색하는 선수가 늘었다”고 했다.
2014년 에스케이 시절 난생처음 식스맨으로 밀린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 그는 “충격이었다. 한동안 멍때렸다”고 표현했다. 벤치에서 바라본 코트는 전혀 달랐다. 그는 “벤치 선수들이 어떤 마음인지 처음 알았다. 왜 좀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 왜 헤아리지 못했을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줬어야 했다는 깨달음이 왔다”고 설명했다. 농구를 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선수들의 마음이 눈에 보이니 팀 분위기를 잘 만들 수 있는 길도 보였다.
주희정은 여전히 강하다. 체력에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후배들을 잘 다독인다. 2000~2001 시즌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끈 것처럼 이번 시즌에는 식스맨으로 팀 우승을 거들고 싶다. 그는 “기록은 나중에 기억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팀 승리다. 이번 시즌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주어진 몫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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