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국제산악연맹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종합 챔피언 박희용이 1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스파이더실내암벽등반장에서 훈련을 하며 포즈를 잡고 있다. 성남/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체력은 비슷해요. 승패는 멘털이죠.”
아이스클라이밍 세계 1위 박희용(35·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은 1m70, 63㎏이다. 헐렁한 티셔츠와 트레이닝복을 입으니 거리에서 흔히 보는 깡마른 소년 같다. 하지만 우락부락 튀어나오지 않은 매끈한 근육 속에는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가 숨어 있다. “밥만 공급해주면 절벽에 붙은 홀드를 잡고 하루 종일 버틸 수 있어요.” 14일 경기도 성남시 모란역 근처의 ‘박희용 스파이더 인공암벽장’에서 만난 그는 ‘거미 인간’이라는 듯 태연스럽게 말했다. “저 같은 초보자는 얼마나 버틸 수 있나요?”라고 묻자, “10초”라며 웃는다.
박희용의 주종목인 아이스클라이밍의 난이도 종목(영어로는 리드)은 자연 상태의 얼음 위에서 하지 않는다. 참가 선수한테 동등한 조건을 부여하기 위해 인공암장과 얼음을 섞어 세트장을 만든다. 키와 체력 등이 좋고, 층이 두터운 서양 선수들이 우세할 것 같은 이 종목에서 그는 아시아의 ‘작은 거인’이다. 지난 1월 청송 대회를 포함해 2016~2017 시즌 총 5차례의 월드컵에서 3번 우승했고, 이달 초 프랑스에서 열린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2011, 2013년에 이어 현재 세계 1위.
비결은 아이스클라이밍에 최적화된 몸과 두뇌. 박희용은 보통 하루 6시간 정도 훈련을 한다. 그런데 근육량을 늘리는 훈련보다는 순발력, 지구력, 유연성을 높이는 쪽에 중심을 둔다. 주로 암벽장에 매달려 훈련하며 악력과 허리, 다리, 팔의 힘을 키운다.
아이스액스(얼음도끼)로 벽에 박힌 홀드를 찍고 올라가는 것은 보기보다 어렵다. 홀드는 돌처럼 딱딱한 플라스틱이나 쇠, 자연석 등으로 만들어 찍히지 않는다. 매끄러운 표면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도끼를 잘 걸쳐놓아야 하고, 느낌으로 힘을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빨리 올라가도 한번 미끄러지면 그 지점에서 점수가 계산돼 우승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박희용은 “어떠 대회는 난도를 높이기 위해 선수용 홀드의 파인 부분을 세로로 놓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옆으로 도끼를 걸어서 어깨로 버티면서 다음 홀드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타고 오를 때는 다리(30%)보다는 팔(70%)의 힘에 더 많이 의존한다. 기본적으로 천장을 타고 가는 것과 같은 오버행 구간도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30여m 높이의 코스를 올라가는 것은 목숨을 건 싸움이다. “400m를 막바지에 전력질주하는 것과 비슷해요. 숨이 턱턱 막히고 손에선 힘이 쫙 빠져요. 거기서 멈추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도끼를 찍어요.”
선수들은 대회 전 코스를 딱 한번, 그것도 5분만 살펴볼 수 있다. 경기 당일에는 다른 경쟁자들이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없도록 대기소에 격리된 채 출전을 기다린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자신만의 코스 공략도를 그려서 기억하는데, 그것은 마치 ‘몸으로 푸는 수학 문제’와 비슷하다. 박희용은 “30~40개의 홀드 위치가 필름으로 찍은 듯 머리에 각인돼 있어야 한다. 그다음엔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좌표를 잡아낸다. 시간도 1분 단위로 계산한다. 체력보다는 머리가 50% 이상 중요하다”고 했다.
대회에 나갈 땐 집중하고 집중한다. 얼음도끼의 날을 2시간씩 공들여 갈면서 싸움을 준비한다. 그런데 송곳처럼 날카롭게 갈 수도 없다. 홀드에 잘 걸리기는 하겠지만 만에 하나 날카로운 부분이 뭉툭해지면 그다음부터는 미끄러져 대책이 없다. 몸과 손, 머리의 감각으로 밀리미터(㎜) 단위의 홀드 홈에 걸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갈고 닦는다. 그런 마음가짐이기에 빙벽에 오를 땐 주변에서 나는 일체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한다고 한다.
17살 때 암벽 등반으로 시작해 20대 스포츠클라이밍(인공암벽) 국가대표를 거친 박희용은 절대강자다. 국내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가 2천여명이고, 이 가운데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가 500명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우뚝하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스포츠클라이밍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김자인·천종원 등이 준비를 하고 있고, 국제산악연맹과 대한산악연맹(김종길 회장)은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해 내년 평창겨울올림픽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쇼케이스를 준비 중이다. 30대 중반이지만 얼음도끼를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는 “등반의 기쁨은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의 성취감이다. 늘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암벽에 오른다. 아이스클라이밍은 규정된 코스로 경기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올림픽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