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이 20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히비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우승한 뒤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삿포로/연합뉴스
불과 열흘 전, 이승훈은 여덟 바늘을 꿰맸다.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세계대회 팀추월 경기에서 넘어져 정강이가 베였다.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장거리 스케이팅의 간판이자 대표팀 맏형은 달랐다. 경기 시작 뒤 무섭게 달려나가더니 아시아 기록을 새로 썼다. 정신력이 놀랍다.
이승훈(29·대한항공)이 20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첫날 남자 5000m 경기에서 6분24초32로 들어와 대회 2연패를 이뤘다. 2011년 자신이 세운 아시아기록(6분25초56)도 깼다.
이승훈은 지난 1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팀추월 경기 도중 넘어져 오른쪽 정강이를 다쳤다. 이후 남은 경기를 모두 포기했고, 겨울아시안게임 출전도 불투명했다. 통증은 크지 않았지만 회전 구간에서는 발을 틀어야 해 부상 부위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삿포로 현지에 도착해서도 훈련보다는 몸을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실밥을 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승훈은 “메달을 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몸 상태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날 힘을 배분하며 무서운 막판 스퍼트로 저력을 과시했다. 4조 인라인에서 일본의 이치노헤 세이타로와 경주한 이승훈은 첫 200m를 19초44로 주파한 뒤, 1000~1400m 구간부터 속력을 높였다. 그는 매 400m를 31초 이하의 안정적인 움직임으로 돌파했고, 체력이 떨어지는 4200~4600m 구간과 4600~5000m 구간을 모두 29초대로 도는 막판 괴력을 선보였다. 2위 쓰치야 료스케(6분29초67), 3위 이치노헤(6분31초84)와도 차이가 났다.
원래 쇼트트랙 선수인 이승훈은 장거리로 전환해 2010 밴쿠버올림픽 1만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2014 소치올림픽에서는 팀추월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등 변신도 빠르다. 내년 평창올림픽을 앞두고는 여러 명의 선수들이 집단적으로 출발하는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세계 1위다. 주종목을 바꾸면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는 것은 타고난 성실성과 기본인 쇼트트랙 훈련을 빼먹지 않는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자 장거리 간판인 김보름(24·강원도청)은 이어 열린 여자 3000m에서 4분7초80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 다카기 미호가 4분5초75를 기록하면서 밀렸다. 남자 단거리의 기대주 차민규(24·동두천시청)는 남자 500m에서 동메달(34초94)을 챙겼다. 중국의 팅유가오(34초69)와 일본의 하세가와 쓰바사(34초79)에게 밀렸지만 기존의 아시아기록(34초98)을 넘어섰다. 1000m에서 4위에 그친 이상화(28·스포츠토토)는 21일 주종목인 500m에서 정상에 도전한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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