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서울 삼성의 홈 경기가 열리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는 작전시간 때 관중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가 등장한다. 사진은 후원사의 대형 우유팩을 늘어뜨려 관중을 즐겁게 하는 모습. 삼성 썬더스 제공
“뭐 얼마나 하려고…”
“유니폼 지저분하게 뭐야…”
과거 든든한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스포츠 구단 관계자들한테는 낯설지 않은 말이다. 만년 적자라도, 굳이 영업을 뛰지 않았다. 아예 신경을 껐다. 유니폼 광고도 모기업이 자동으로 책임졌다. 연말엔 비용 초과분을 모기업이 알아서 메워주었다.
하지만 달라지고 있다. 기업형 구단도 자생력을 갖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삼성 스포츠단에서 불고 있다. 지난해 구단 역사상 최초로 삼성 계열사 이외의 기업 브랜드를 유니폼에 단 삼성 축구단과 농구단의 변화는 극적이다. 그룹의 온실에 안주하거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뛴다. 삼성 농구단의 신흥수 과장은 “허리띠 바짝 졸라매고 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잠실체육관에 가면 변화가 실감 난다. 40분 경기 사이에 주어지는 하프타임과 작전타임 때 체육관은 쇼 무대가 된다. 끈으로 매단 대형 우유 팩을 2층 관중석에 늘어뜨려 흥을 돋우고, 선수들이 입장할 때 제품 마스코트와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영상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등 브랜드를 홍보한다. 연간 5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농구단 전체 예산에 비하면 우유 기업의 후원액수는 몇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체육관 공간을 삼성이 아니라 우유 기업 이미지로 도배하다시피 할 정도로 배려하는 서비스는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풍경이다. 유니폼에는 리더스라는 또 다른 기업의 이미지도 있다.
수원 삼성 축구단도 지난해 스폰서인 우유 기업의 젖소를 수원월드컵경기장에 등장시켰다. 푸른 잔디 위의 얼룩소 이미지는 관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스폰서를 위해서라면 어떤 아이디어도 낼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지난해 프로축구 수원 삼성은 경기장에 대형 젖소를 등장시켜 팬들을 즐겁게 했다. 후원사 홍보를 위한 배려이자 팬 볼거리를 위한 장치로 평가받는다. 제일기획 제공
삼성이 여름과 겨울 종목인 축구와 농구를 접목해 연중 홍보가 가능한 패키지 스폰서십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농구, 축구, 야구, 배구 등 프로구단을 관리하는 제일기획의 자원과 노하우, 기획력에 힘입은 측면도 있다. 프로농구 경기 중 코트 바닥을 닦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마핑석’을 설치하고, 감독과 악수를 할 수 있는 좌석 등으로 차별화 하거나 프로축구에서 무료티켓 폐지선언을 한 것이 사례다. 프로축구에서는 경기 명칭, 경기장 이벤트, 브이아이피(VIP) 초청 등을 한시적이지만 스폰서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스폰서로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한테도 확장했다.
효과는 나오고 있다. 프로농구 삼성의 2015~2016 시즌 유료관중률은 77.1%, 관중 점유 한 좌석의 매출액인 객단가는 7781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2014~2015 시즌의 유료관중률(49.6%)과 객단가(3461원)와 비교된다. 수원 삼성 축구단도 2015년 유료관중 비율을 92.8%로 끌어올렸고,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2014년(49.3%)의 두배 가까운 수치로 최근 2년 새 확 달라졌다.
스포츠 구단의 자생력은 시대의 화두다. 프로농구연맹(KBL)이 구단의 비용 절감을 위해 3~4년 안에 각 구단이 운영하는 합숙소를 없애는 방안을 연구 중이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지속해서 구단 임원과 프런트 교육을 통해 마케팅을 강화하는 이유다. 일본 제이리그의 시민구단인 반포레 고후가 20만 인구의 소규모 도시에 있지만 400여개의 스폰서로 흑자를 내고 있고, 국내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100여개 이상의 스폰서를 확보해 생존을 건 싸움을 하는 것도 기업형 구단에 자극을 주고 있다.
제이리그 전문가인 박공원 안산 그리너스(K리그 챌린지) 단장은 “요즘은 기업 구단의 마인드가 영업 중시로 바뀌었다. 과거처럼 모기업 광고효과라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지원받을 수도 없다. 영업에 좀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하고, 구단이 가용할 수 있는 선수들도 필요하다면 영업 전선에 나서야 한다. 자생력을 바탕으로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