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경 선수가 18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패러아이스하키선수권 A풀대회 풀리그 4차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공격 진영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하얀 빙판 위에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스틱으로 퍽을 치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시속 100㎞가 넘는 퍽을 향해 썰매를 지치며 쏜살같이 달려가 맹수처럼 몸끼리 부닥친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선수들이 18일 오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 패러(장애인)아이스하키선수권 A풀대회 풀리그 4차전에서 이탈리아와 맞섰다. 전반 4분46초 만에 정승환과 장종호로 이어지는 패스를 이종경이 멋진 선제골로 장식했다. 비록 2-2로 비긴 뒤 슛아웃 끝에 아쉽게 역전패했지만 이미 3-4위전 진출은 확정지은 터. 대표팀의 내년 평창패럴림픽(2018년 3월9~18일)에서 사상 첫 메달의 꿈도 영글어간다. 경기가 끝난 뒤 대표팀을 이끄는 한민수(47)와 이종경(44), 정승환(31)을 만났다.
■ 대표팀 맏형 한민수 두살 때 침을 잘못 맞은 게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왼 무릎에 류머티즘 관절염이 생겼다. 목발은 그와 한몸이었다. 자랄수록 무릎은 더욱 악화됐다. 나이 서른에 왼 다리를 아예 잘랐다. 한동안 상실감에 빠졌다. 2000년 패러아이스하키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즐거움이 생겼다. 17년째 대표팀 수비수로 활약 중인 그는 ”공격은 관중을 부르지만 수비는 승리를 부른다”고 했다. 서광석 감독은 “파워가 좋고 믿음직한 팀의 리더”라고 했다. 고2 소연, 중1 소리, 두 딸의 아빠인 그는 “딸들이 태극마크를 단 아빠를 자랑스러워한다”며 웃음지었다.
대표팀 맏형 한민수가 18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패러아이스하키선수권 A풀대회 풀리그 4차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성공시킨 이종경 선수에게 축하를 보내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 만능 스포츠맨 이종경 180㎝의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이 눈에 띈다. 그러나 2002년 6월,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날다가 그만 추락하고 말았다. 그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한·일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었지만 그는 하반신 마비라는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 일이다. 다시 웃음을 되찾은 것은 2년 뒤 접한 패러아이스하키 덕분이었다. 빠르고 격렬한데다 퍽을 칠 때의 짜릿함에 푹 빠졌다. 그는 “패러아이스하키는 부상이 매력이다. 격렬하게 몸을 부딪힌 게 재활에 큰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이번 대회 대표팀의 12골 중 2골을 책임졌다.
대표팀 에이스 정승환 선수가 18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패러아이스하키선수권 A풀대회 풀리그 4차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공격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 패러아이스하키의 ‘메시’ 정승환 집 근처 공사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공사장 철구조물이 무너져내렸다. 오른쪽 다리가 쇠파이프에 깔렸다. 피투성이가 됐다. 오른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의족을 차고 학교를 다녔고, 2004년 한국복지대학에 입학했다. 학교 선배인 이종경의 권유로 경기 성남 탄천빙상장에서 패러아이스하키를 처음 봤다. 가슴이 뛰었다. 썰매, 스틱, 퍽과 씨름하며 흘리는 땀이 행복했다. 2년 뒤 그의 가슴에 태극마크가 새겨졌다. 어느덧 12년차. 그는 대표팀의 에이스다. 득점의 절반가량을 책임진다. 2012년 노르웨이세계선수권 은메달을 이끌고 베스트6에 뽑혔다. 실력뿐 아니라 잘생긴 외모로도 인기가 많다. 키(1m67)가 작아 ’메시’라는 별명이 더 어울리지만 본인은 싫어한다.
서 감독은 “북미 선수들의 기량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특히 스피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정승환은 “지금은 온통 내년 평창패럴림픽 생각뿐이다.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했다. 늦은 오후 강릉의 햇살이 유난히 밝았다.
강릉/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