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평창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간판 서이라 선수가 1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스케이트 부츠를 목에 걸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어! 안 돼요.” 스케이트 날이 다른 쪽 날과 부딪히자 기겁을 한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머리카락을 밟아도 느껴요. 연습하다 스케이트 날끼리 부딪히면 얼굴 붉히기도 해요.” 만지작거리던 기자가 민망해진다. ‘뭐 이리 예민하지….’
19일 만난 쇼트트랙 국가대표 서이라(25·화성시청)는 1m68, 63㎏으로 겉보기에는 작다. 하지만 지난달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1000m 금메달을 땄고, 500·1500·3000m에서 상위 성적을 내 개인종합 1위에 올랐다. 덕분에 국내 선발전 없이 평창올림픽 국가대표로 가장 먼저 결정됐다.
만능의 힘은 두 곳에서 나온다. 하나는 트레이닝복 안에 감춰진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의 탄탄한 근육에서, 다른 하나는 예술가 못지않은 섬세한 감각과 지능에서다.
쇼트트랙은 111m 트랙을 여러 명이 뭉쳐서 돈다. 순위의 우열은 돌 때 가려진다. 서이라는 “보통 회전 구간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시키는 동작을 세번 정도 한다. 이때 치고 나올지 말지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했다. 선두로 달리는 것은 바람의 저항을 받아야 하고, 다른 선수를 볼 수 없는 부담이 있다. 선두에 바짝 붙어 달리다가 막판 스퍼트로 추월하는 작전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붙을지, 치고 나갈지, 아니면 선두를 유지할지는 순간순간 달라진다. 서이라는 “스피드스케이팅은 자기 기록을 위한 싸움인 데 비해 쇼트트랙은 생각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고 했다.
스케이트 날에 예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날은 밀리미터 단위 폭의 양쪽으로 솟아 있다. 그중 한쪽으로만 탄다. 서이라는 “직선 주로를 달리더라도 킥을 하기 때문에 몸은 좌우로 쏠린다. 얼음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스케이트 날의 한쪽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더 복잡한 것은 이 날이 직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징을 과장하면 마치 활꼴로 돼 있다. 역시 전체가 바닥에 닿지 않고 부분만 얼음판에 닿는다.
여기에 코너에서 비스듬히 달리며 속도를 내야 하니 신경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모래알이나 머리카락에 날이 상처를 입으면 느낌이 온다. 스케이팅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자칫 그 부분 날이 무뎌져 미끄러질 수 있다. 더욱이 날 전체를 다시 기계로 갈아야 한다. 이 때문에 200만원짜리 마케이즈 부츠와 한짝에 60만~70만원짜리 하는 칼날을 신주 모시듯 한다.
쇼트트랙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한 서이라 선수가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에서 스케이트 신발을 목에 건 채 계단을 오르고 있다. 성남/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운도 본인이 챙겨야 한다. 아무리 잘 타도 옆 선수가 넘어지면 다 함께 무너진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는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측해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방어운전 같은 것이다. 순간의 판단력, 코치의 전략과 시나리오, 당일의 컨디션 등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쇼트트랙을 시작한 서이라는 대기만성형이다. 처음 국가대표가 된 시점도 2014년 소치올림픽 뒤인 한국체대 4학년 때였다. 그때까지 국내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좀더 빨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러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운동 이외 잡다하게 신경을 썼던 모든 것을 대학 4학년 때 끊었다”고 했다. 성격도 특이해 “한번 결심하면 올인한다”고 한다. 하루 6~8시간 태릉에서 새벽 오후 두 차례의 훈련을 해도 지겹지가 않다. 집에서 쉴 때면 누워 두 다리와 상체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복근운동을 반복한다. 2월 삿포로겨울아시안게임 1000m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았으니 기회에는 강한 편이다.
물론 한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일을 못 하는 것은 때로 문제가 된다. 고집스럽게 자기 습관에 집착하는 것은 한 예다. 그러나 긍정적 마인드와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이라의 목표는 당연히 내년 평창올림픽 금메달이다.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흐트,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 헝가리의 류 형제, 그리고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경쟁 상대다. 그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때 역대 최고의 기분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에 대한 간절함은 여전하다. 지난해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느낌이 좋았다. 그곳에서 연습을 계속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자 올림픽대표팀 5명 가운데 4명이 새롭게 교체돼 팀 호흡도 중요해졌다. 서이라는 “곽윤기 형과 후배인 임효준, 황대헌, 김도겸과 잘 맞을 것 같다.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헬멧과 고글도 다른 선수들에 견줘 많이 튀는 서이라가 올림픽을 향해 100% 몰입에 들어갔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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