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환아 리우 가야 돼? 교수 해야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지난해 5월 리우올림픽행을 추진하던 박태환에게 한 포기 종용 발언은 박근혜 정부 체육정책의 단면을 보여준다. 체육 행정의 최고 수장이 특정 선수의 선택마저도 굴복시키려고 나선 것은 왜일까? 박근혜 정부의 원칙 강조 철학을 체육계의 박태환 출전 포기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는 설부터 ‘정유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만들기’를 위한 공작설까지 여러 얘기가 나왔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체육계를 동반자로 보기보다는 지시나 교정의 대상으로 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체육계 4대악 척결도 취지와는 다르게 체육계를 비리집단으로 몰고 가면서 큰 상처를 입혔다.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은 펜싱대표팀 감독이나 레슬링 상비군 감독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펜싱과 레슬링 쪽 관계자는 “관행처럼 해오던 공금 관리나 훈련장비 구입 등과 관련해 먼지 털듯 조사를 받자 버텨내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과연 이들이 죽음에까지 이르러야 할 죄를 지었는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정행 전 대한체육회장의 목줄을 겨냥해 대한유도회를 감사하고, 조인철 국가대표 감독과 안병근 용인대 교수가 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은 것도 소리만 요란했다. 사건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유예됐고, 대신 유도 대표선수들이 모조리 수사를 받으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 몇달 뒤 리우올림픽에서 유도는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
반면 대한승마협회는 비리의 종합세트인데도 박원오 전 전무 등 특정 인맥이 집행부를 접수하도록 방관했고, 생활체육전국빙상연합회가 부모와 자식까지 24년간 회장직을 독점하도록 용인했다. 눈엣가시인 대한테니스협회장이 그동안의 공헌이 무색하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고, 예산을 무기로 대한체육회 산하 50여개 개별 연맹을 쥐락펴락했다.
이런 이중적 잣대로 정부나 정책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체부 고위 공무원 가운데 일부는 최근 감사원 감사 뒤 징계를 받았지만, 일종의 부역 세력은 여전히 정부나 대한체육회,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안에 있다. 정권의 뒷조사 등 온갖 압박을 버텨낸 노태강 차관의 복권은 상징적이다.
체육계를 종 부리듯 하면서 더 큰 권력 앞에서는 기었다. “평창올림픽 분산개최는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엔 “안 된다”고 저항하지 못했다. 시설이 풍부한 서울에서 아이스하키만이라도 개최했더라면 수천억원의 공사비 절감뿐 아니라 올림픽 흥행에 큰 기폭제가 될 수 있었다. 문체부도 자체적으로 분산개최가 옳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일본도 아닌 국내 분산개최를 거부할 때 당당히 이의 제기를 했어야 했다. 빙상 쪽 관계자들은 “아이스하키의 서울 분산개최 포기는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사후 활용뿐 아니라 올림픽 기간에 예상되는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난까지 분산개최를 포기한 후폭풍이 클 것”이라고 말한다.
2010년 이래 7년간 문체부 체육국장(정책관)의 임기를 살펴보면 평균 1년2개월이다. 이런 짧은 기간에 장기계획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전문성이나 일관성도 보증할 수 없다. 혹여라도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체육계는 문제 집단’이라고 매도한다면 치명적이다. 성문정 한국스포츠개발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정부의 체육정책은 하향식 지시가 일반적이었다. 전문성보다는 공무원들의 우월의식이 앞섰다. 문체부가 제도적인 갑질에서 탈피해야 한국체육의 백년대계를 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체육인들이 스스로 위상을 떨어뜨린 측면이 있다. 스포츠맨십이나 페어플레이, 배려 등은 스포츠의 최고 덕목이다. 자체적으로는 가장 선진적인 규정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경기력이나 승부, 집단주의, 상명하복 등에 매몰돼 개인의 창의성이나 수업, 자율성을 경시해왔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훈련장비나 비용 일체를 지원받고, 올림픽 메달을 딸 경우 연금까지 받으면서 체제 순응적으로 바뀐 것도 사실이다. 체육학계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지적인 생산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을 서며 지지선언을 하지만 정작 정권 핵심부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는 “아마추어 스포츠는 생활이며 복지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속에서 엘리트도 성장한다. 또 현장에는 나름의 방식이 있고 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내용을 모르고 탁상에서 정책을 세우면 간섭으로 느낀다. 현장에 나가 운동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보고 무엇을 지원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다음 연맹의 자력갱생을 위한 대안을 짜고, 그 이후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때 간섭해도 늦지 않다. 도종환 장관의 말처럼 현장에서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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