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하나가 대한하키협회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징계마저 규정을 어긴 과도한 봐주기로 비쳐져 내부 반발이 심하다. 일관성 없는 일처리까지 겹치면서 한때 팬들의 응원을 받았던 ‘붉은 땅벌’은 추락했다. 남자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는 집단행동을 할 움직임마저 보인다. 신임 집행부의 실세 부회장이 막후 ‘정치’를 펴며 편가르기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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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욕설, 폭언이냐 아니냐 대한하키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5월말 허아무개 여자대표팀 겸 인제대 감독에게 국내대회 출전정지 1년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4월30일 아산에서 열린 회장기 대회 한국체육대와의 대학부 결승전에서 경기를 지연시켰다는 이유다. 하지만 징계는 지나친 봐주기이며,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처벌을 요청한 심판진은 허 감독의 경기 중단보다는 폭언(욕설)을 문제삼았다. 하키협회 자체규정으로는 심판진에 폭언을 하면 최소 자격정지 5년의 중징계를 받는다. 실제 이날 허 감독은 경기 중 많은 욕설을 내뱉았고, 하키협회 실명 게시판에는 “(심판을 향한 벤치의) 욕설이 난무한 광경에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 적지는 않겠지만…”(장진순)이라는 글도 올라와 있다.
이에 대해 안용덕 협회 스포츠공정위원장은 “폭언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다. 허 감독이 마주보고 삿대질한 것은 아니고, 돌아서면서 혼잣말처럼 했다. 과거의 공도 있어 수위가 낮은 경기지연 부문에만 징계를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허 감독의 욕설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있고, 당사자인 심판들은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요구하기도 했다. 허 감독은 6월말 월드리그 국제대회에 팀을 이끌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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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대표팀 코칭스태프 경질 하키협회는 여자대표팀 사령탑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 남자하키대표팀에 대해서는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말 부임한 김영귀 감독과 코치진 2명을 성적부진을 이유로 퇴진시켰다. 한진수 하키협회 전무는 “이달 월드리그 3라운드 성적(1승4패)이 안 좋았다. 내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해서라도 대표팀을 새롭게 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경우엔 감독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세대교체를 위해 대표팀 경력이 없는 선수를 대거 뽑은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 중국의 내몽고자치주 대표팀에 진 것을 경질의 결정적 빌미로 삼았지만, 중국은 성단위 팀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반면 새 감독 이후 한국 남자대표팀은 단 한번의 A매치도 할 수 없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하키 은메달의 주역인 송성태 코치는 “날벼락을 맞은 것 같다”고 했다.
코칭스태프 경질 회의를 주재한 경기력향상위원장의 자격도 시비거리를 남겼다. 하키협회의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는 “징계를 받은 지도자나 임원은 징계만료 시까지 (직책과) 관련한 모든 활동이 제한된다”(27조7항)고 돼 있다.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아산 회장기대회 경기진행 미숙으로 저지(감독관) 3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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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집행부의 지도력 휘청 하키협회는 올해 2월 신임 회장이 부임하면서 새로운 집행부를 꾸렸다. 신정희 실무 부회장과 한진수 전무의 2인이 핵심이다. 신 부회장은 이전 김종 차관 시절 대한체육회에서 부회장을 맡았고, 국민생활체육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장기간 하키협회장 자리가 비자 직접 나서 신임 회장을 영입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실무 부회장을 맡은 이래 잇따라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 전직 대표팀 감독은 “가뜩이나 팀 해체와 선수 고갈 등 어려운 시기에 서로 지혜를 모아 하키판을 키워야 하는데 집행부가 권력 놀음만 하고 있다. 조직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