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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먹은 1톤 해머” 엄마복서 챔프의 꿈

등록 2017-07-20 17:58수정 2017-07-20 21:17

10월 세계챔피언 도전 박혜수
박혜수가 12개월 된 아들 강민이와 환하게 웃고 있다.
박혜수가 12개월 된 아들 강민이와 환하게 웃고 있다.
한눈에 봐도 가냘픈 체구다. 그런데 번개 같은 주먹이 바람을 가른다. 샌드백을 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19일 오전 인천시 서구 석남동 성산효체육관. 사각의 링에 오른 박혜수(29)가 신갑철(62) 관장이 내민 양손의 표적을 향해 연신 강펀치를 날린다. 신 관장은 “스피드, 파워, 순발력, 지구력 등 나무랄 데가 없다. 체력만 보완하면 세계챔피언은 시간문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혜수는 원투, 스트레이트, 훅 등 배운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신 관장은 “비큐(BQ·복싱 아이큐)가 높다”며 껄껄 웃었다.

박혜수는 지난해 7월 아들을 출산한 ‘엄마 복서’다. 한때 접었던 세계 챔피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지난해 가을부터 다시 글러브를 끼었다. 그는 육상 중장거리 선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을 시작해 인천체고를 거쳐 부산외대 2학년 때까지 1만m와 3000m 장애물 선수로 활약했다. “육상 선수 하면서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은 따지 못했어요. 언제나 은메달 아니면 동메달이었죠.”

학창시절 육상선수 땐 만년 2위
8년 전 복싱 입문 동양챔프 올라
세계정상 노렸지만 아쉬운 패배
지난해 아들 낳은 뒤 재도전 결심

신생기구 WBS 초대 타이틀 노려
“오랫동안 여러체급 석권하고파”

육상에서 자꾸만 마음이 멀어져 가던 2009년 무렵 우연히 복싱을 접하게 됐다. 신 관장의 아들이 전국체전에서 플라이급부터 밴텀급까지 금메달을 3개나 휩쓴 복싱 국가대표 신동명(29)인데, 박혜수와는 인천체고 동창이다. 고교 시절 신동명은 복싱부, 박혜수는 육상부였다. “그 친구 소개로 처음 체육관을 찾았어요.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면서 복싱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엄마 복서’ 박혜수가 오는 10월7일 필리핀의 리바스와 세계타이틀전을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엄마 복서’ 박혜수가 오는 10월7일 필리핀의 리바스와 세계타이틀전을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박혜수는 초등학교 육상 코치를 병행하면서 링에 올랐다. 복싱을 시작한 지 한달 반 만에 급하게 데뷔전을 치렀지만 쓴잔을 마셨다. 복싱 입문 3년 만인 2012년 5월, 한국 타이틀을 딸 기회를 맞았다. 그런데 경기 도중 이마가 찢어져 8바늘이나 꿰맸다. 그 일로 부모님 반대가 너무 심해 글러브를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2013년 8월,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범아시아복싱연맹(PABA) 슈퍼플라이급 동양타이틀 매치에서 타이의 아이라다 싯손람을 5회 케이오(KO)로 눕히고 동양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그해 11월, 세계 챔피언에 도전했다. 세계복싱협회(WBA) 미니멈급 세계 타이틀이었다. 멕시코의 강자 아나벨 오르티스(당시 28살)를 제주로 불러들여 선전했지만 아쉽게 10라운드 판정으로 졌다. “너무나 아쉬웠어요. 실의에 빠져 있을때 후배가 큰 힘이 됐죠.”

후배에서 남자친구로 발전한 지금의 남편 문성혁(24)씨다. 5살 연하지만 편하게 의지할 수 있었다. 남편 문씨도 라이트급에서 활약 중인 프로복서다. 지난해 7월12일 아들 강민이를 낳았다. 가족이 생기니 용기가 솟았다. 임신과 출산 등으로 잠시 내려놓았던 글러브를 다시 끼었다. “아이는 시댁에 맡기고 남편이랑 새벽에 바람을 가르며 로드워크를 같이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오뚝이처럼 일어나니 기회가 생겼다. 오는 10월7일 인천 남구청 체육관에서 새로운 복싱기구인 세계복싱협회(WBS) 라이트플라이급 초대 타이틀을 놓고 필리핀의 카를레안스 리바스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른다. 1988년생 동갑이고 키도 164㎝로 똑같다. 세계프로복싱 기구는 10개가 넘을 정도로 난립해 있다. 이 가운데 세계복싱협회(WBA), 세계복싱평의회(WBC), 국제복싱연맹(IBF), 세계복싱기구(WBO)가 4대 메이저 단체다. 박혜수가 도전하는 세계복싱협회는 1995년 출범한 범아시아복싱연맹(PABA)이 지난해 10월 세계기구로 발전한 단체다. 조은상 세계복싱협회 랭킹 조정위원장은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회원국이 42개 나라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박혜수의 왼쪽 손목에는 해머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는 “내 주먹은 1톤짜리 핵주먹이라는 뜻”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박혜수의 왼쪽 손목에는 해머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는 “내 주먹은 1톤짜리 핵주먹이라는 뜻”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세계에서도 여성 복서 가운데 엄마 복서가 적지 않다. 박혜수가 22살 때 대적했던 사쿠라다 유키(당시 42살)는 20살 때 아이를 낳은 뒤 20년 넘게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박혜수는 “유키가 시합 당시 저에게 ‘내 딸과 동갑’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박혜수와 세계타이틀전을 벌인 멕시코의 오르티스도 ‘엄마 복서’다. 박혜수의 왼쪽 손목에는 조그마한 해머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는 “내 주먹은 1톤짜리 핵주먹이라는 뜻”이라며 웃음지었다. 그는 요즘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는 틈틈이 해외 복서들의 동영상을 보며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세는 나이로 서른살인 ‘엄마 복서’지만 그의 꿈은 원대하다. “오랫동안 챔피언 벨트를 보유하면서 여러 체급을 석권하고 싶습니다.” 나이를 잊은 해맑은 그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졌다.

인천/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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