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아시아여자청소년핸드볼대회에 출전중인 한국 선수들이 경기가 없던 23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숙소 앞 풀장에서 오성옥 감독(아랫줄 가운데)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자카르타/김동훈 기자
경기가 없던 지난 23일 오후 앳된 여고생 선수들이 호텔 야외 풀장에 풍덩풍덩 뛰어든다. 여기저기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카자흐스탄 선수들과 함께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선수들처럼 풀장 가장자리에 일렬로 서더니 두손을 하늘로 모은 뒤 옆으로 쓰러져 물속에 빠진다. 그 모습에 스스로들 깔깔댄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고 있는 제7회 아시아여자청소년핸드볼선수권대회(18살 이하)에 출전중인 한국 여고생 선수들의 휴일 풍경이다. ‘심부름꾼’을 자처한 김진수 단장은 선수들을 위해 손수 요리도 하고, 선수들 방 문밖에 일일이 태극기도 붙였다.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면 김 단장이 수훈 선수 3명을 뽑아 상금을 주며 격려한다.
화기애애한 한국팀의 사령탑은 ‘원조 우생순’ 오성옥(45) 감독. 그는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은 2005년 창설된 이 대회에서 2015년 6회 대회까지 27전 전승을 거뒀다. 당연히 6회 연속 정상에도 올랐다. 7개국이 풀리그로 우승팀을 가리는 이번 대회에서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홍콩, 우즈베키스탄에 농구 점수를 넣고 이기면서 31전 전승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사실상 적수가 없다.
하지만 오 감독은 자칫 ‘신화’가 깨질까 노심초사다. 그는 “선수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단장님과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한다”고 했다. 대회 마지막날인 27일 일본과의 일전이 사실상 결승전이다. 지난달 한·일 정기전에서 성인 국가대표 여자팀은 10골 차로 이겼지만 남자팀은 일본과 비겼다. 여자농구는 이미 일본에 역전을 허용했다. 오 감독은 “여자핸드볼도 일본은 물론 중국도 언제 따라올지 모른다. 방심하지 말고 더 준비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여자청소년핸드볼대표팀 오성옥 감독. 자카르타/김동훈 기자
오성옥 감독의 선수 시절은 화려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올림픽 5회 연속 출전 기록은 우리나라 여자선수 가운데 올림픽 최다 기록이다. 다섯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만 있었더라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금·은·동 메달을 모두 따내는 진기록도 세울 뻔했다. 올림픽에서 세차례나 도움주기 1위에 올랐고, 베스트7에 두차례 선발된 한국 여자핸드볼의 ‘전설’이다.
2010년 6월 일본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 사령탑을 맡아 감독 겸 선수로 뛰다가 만 39살이던 2011년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2년 전, 무려 18년 동안의 일본과 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지난해 체코 세계여자청소년핸드볼대회(18살 이하)에서 처음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9승1패로 한국을 10년 만에 이 대회 3위로 이끌었다. 전승을 달리다 준결승에서 러시아에 3골 차로 쓴잔을 마신 게 내내 뼈아팠다. 이번 아시아대회에는 내년 세계대회 설욕을 다짐하며 일부러 한 살 어린 17살 이하 선수들을 선발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고 있는 제7회 아시아여자청소년핸드볼대회에 출전중인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오성옥 감독의 작전을 듣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오 감독은 딸 같은 선수들이 크게 성장해 한국 여자핸드볼의 옛 영광을 되찾아주길 소망한다. 그래서 올여름 뜨겁게 담금질을 했다. 그는 “올여름 무더위에도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마음으로, 실업팀 언니들을 이긴다는 생각으로 ‘빡세게’ 훈련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제경기 경험을 많이 쌓으면서 아이들이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오 감독이 꼽는 ‘우생순의 후예’는 정지인(17·부산 백양고 2년), 박소연(17·삼척여고 2년), 우빛나(16·태백 황지정산고 1년) 등이다. 그는 “키 180㎝의 정지인은 왼손잡이 공격수로 중거리슛이 좋고, 고교생으로는 유일하게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박소연은 기본기가 잘 갖춰져 수비가 좋고, 우빛나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실수가 적고 지능적인 플레이를 한다”고 칭찬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3위의 주역인 김아영(19·대구시청), 송혜수(18·인천비즈니스고) 박조은(19·광주도시개발공사)도 한국 여자핸드볼의 재목으로 성장중인 ‘오성옥 키즈’다.
제7회 아시아여자청소년핸드볼대회에 출전중인 한국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이 경기가 없던 23일 오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숙소 앞 풀장에서 오성옥 감독(아랫줄 가운데)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자카르타/김동훈 기자
한국 여자핸드볼은 지난해 리우올림픽 조별리그 탈락의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오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무럭무럭 성장해 한국 여자핸드볼의 매운맛을 다시 한번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어린 선수들의 꿈과 땀이 영글어가고 있다.
자카르타/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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