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우씨가 18일 대전광역시 충남대 언어교육원 안에서 올림픽 자원봉사를 지원한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올림픽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 대학생 권현우(23·충남대 사회복지학과)씨 역시 2018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자원봉사자 중 한명이다. 두 대회 기간 동안 강릉 올림픽홍보관에서 관객 안내와 설명 등을 맡는다. 올림픽 자원봉사는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선천적 뇌성마비인 그가 세상과 정면으로 부닥치는 두번째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대전광역시 충남대 교정에서 권현우씨를 만났다. 권현우씨는 “국내에서는 몇 차례 자원봉사를 해봤지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인 국제대회는 처음이라 설렌다”며 “이번 경험이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권현우씨는 어릴 적부터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어딜 가서나 눈치 있게 행동하라”는 어머니 말씀은 정말 듣기 싫은 말이었지만 그가 늘 부닥치는 현실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지만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소심한 장애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들은 어느 할머니의 말씀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권현우씨는 “할머니 한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힘들겠지만 그래도 죽고 싶다는 생각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는 말씀을 하셨다”며 “장애는 있지만 그것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정말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해 겨울방학이던 2016년 1월 권씨에게 스스로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당시 친구와 함께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비행기표까지 예매했지만 출발 일주일을 앞두고 친구가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평소라면 포기했겠지만 그는 비행기표가 아까워서라도 혼자 가보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님께는 친구와 함께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비장애인보다 행동이 늦다는 점을 고려해 적어도 한 시간 정도 일찍 출발하며 신경 썼고, 그 결과 일본 여행은 생각보다 쉬웠다. 오사카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나라사슴공원 등 3박4일 동안의 코스를 혼자 다녔다. 권현우씨는 “일본을 다녀온 뒤 어떻게 혼자 갈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딱히 어렵다는 느낌은 없었다”며 “별거 아닌 일에 지레 겁을 먹었었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홍보대사 김연아와 함께 찰칵. 권현우씨 제공
일본 여행은 그의 삶에 첫번째 터닝포인트가 됐다. 권씨는 “이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 었어도 나는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면 지금은 일단 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일본 여행 중에는 생각이 트인다는 느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녀온 뒤 일상생활 속에서 무언가를 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힘이 돼주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운데), 장애인올림픽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정승환과 함께 기념촬영. 권현우씨 제공
지난해 9월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단순한 배너 광고가 권현우씨의 가슴에 와닿았다. “영화를 보러 가던 중 눈에 띄었는데 갑자기 일본 여행이 떠올랐다”고 했다. 다시 한번 부모님의 걱정에 부닥쳤지만 이번에는 쉽게 허락해주셨다. 일본 여행은 권씨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인식마저 변화시켰다.
한 차례 껍질을 벗은 권씨는 앞으로 더 많은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올림픽 이후 더욱 단단해질 나를 그려보며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며 “대회가 끝난 뒤에는 혼자 가는 덴마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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