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28·은퇴) 이후 완전한 주인을 찾지 못했던 ‘차기 피겨 여제’ 자리는 누구 몫이 될까. 두 명의 ‘러시아 10대 요정’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9)와 알리나 자기토바(16·이상 OAR)가 평창에서 왕좌의 게임을 벌인다.
메드베데바는 지난 11일 평창겨울올림픽 피겨 팀이벤트(단체전)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신기록(81.06점)으로 1위를 차지하며 예열을 마쳤다. 그는 2015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파이널에서 금메달을 딴 뒤, 지난달 유럽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2년여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아이에스유 월드팀트로피 여자 싱글에선 241.31점으로 김연아의 기존 세계신기록(228.56점)을 10점 이상 넘어 우승한 적도 있다. ‘피겨 여왕’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외신들은 “메드베데바가 평창에서도 무적의 기량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자연스럽게 김연아를 이을 여제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메드베데바의 대관식에 반기를 든 것은 ‘16살 샛별’ 자기토바다. 평창올림픽 팀이벤트에서 메드베데바가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자, 이튿날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해 보란 듯 1위를 따내며 캐나다에 이어 오에이아르의 첫 올림픽 은메달을 거들었다. 지난달 메드베데바의 ‘2년 불패’ 기록을 깬 것도 그다.
지난해 초까지 주니어대회에서 압도적 기량을 보이다가, 2017~2018 시즌 그랑프리파이널 대회부터 잇달아 성인 무대 우승을 따내며 단숨에 메드베데바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아름답다’는 뜻의 이름(알리나)처럼 화려한 안무를 구사하는데다, 경기 막판에 점프를 몰아넣고 자유자재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한다. 최근 <타임>지는 ‘평창에서 주목할 31명의 선수’ 가운데 자기토바를 꼽으며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든 점프를 경기 막판에 배치해 심판들의 보너스 점수를 얻는다”고 평가한 바 있다.
둘 모두 몸상태는 한껏 올라와 있다. 앞선 팀이벤트 쇼트 경기에서 메드베데바가 유일한 80점대(81.06점) 연기를 펼쳤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자기토바(158.08점)가 2위와 무려 20.55점 차이로 승리를 가져왔다. 이들은 ‘피겨 여제’ 자리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인 동시에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팀 동료다.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 아래서 함께 지도를 받고, 종종 합동훈련을 통해 함께 성장해왔다. 자기토바가 존경하는 선수로 메드베데바를 꼽은 적도 있다.
평창올림픽 팀이벤트 경기 뒤 메드베데바는 ‘자기토바를 라이벌로 보느냐’는 질문에 “현재는 나의 팀메이트”라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자기토바 경기 때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자기토바 역시 “메드베데바와는 서로 응원하는 사이”라며 지나친 라이벌 구도를 경계했다. 맞대결은 21일(쇼트프로그램)과 23일(프리스케이팅)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펼쳐진다.
강릉/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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