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과 김정은이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아산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을 바라보는 김정은(31)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웃고 있지만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분노까지 뒤섞여 있다. 위 감독은 힘든 훈련을 견뎌내고 믿고 따라줘 마침내 우승의 영광을 함께 한 김정은이 그저 고맙다. 위 감독은 여자프로농구 최초로 감독으로서 6년 연속 통합우승을 일궜고, 김정은은 프로 데뷔 13년 만에 첫 우승과 함께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안았다. 최근 <한겨레>를 방문한 위 감독과 김정은의 이야기를 대담 형식으로 꾸며봤다.
△위성우 감독=국가대표 감독으로 태릉선수촌에서 너를 처음 봤을 때 우리 팀으로 꼭 데리고 오고 싶었어.
△김정은=‘꼭 재기시켜주겠다’는 감독님 말을 믿었어요. 자유계약(FA) 선수로 풀려 우리은행으로 이적했을 때 저에 대한 악플은 감내했지만 ‘유망주를 주고 퇴물을 데려왔다’는 감독님에 대한 악플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위=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훈련은 견딜만 했니?
△김=우리은행 훈련은 다른 팀 선수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지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임)영희 언니가 ‘이걸 이겨내면 확실한 보상이 있다’고 격려해줘서 버틸 수 있었어요.
△위=개막 후 2연패를 당했을 때 ‘올해는 정말 어렵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너의 존재가 큰 힘이 됐어. 너 없었다면 우승도 불가능했어.
△김=밥먹 듯 우승하던 팀에 제가 합류한 뒤 개막 2연패를 당했을 때 저는 정말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했죠. 그때 (박)혜진이가 ‘언니, 앞으로 20승(15패)만 하자’고 부담을 덜어줬고, ‘언니 때문에 우승해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고 말해줘서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위=처음 뽑은 외국인 선수도 기량이 떨어지고 토종 빅맨도 없어서 고생했는데 네가 센터까지 맡아줘서 정말 고마웠어.
△김=힘든 훈련에 포지션 변경까지 힘든 것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감독님의 지도력에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더욱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센터를 봤던 것도 큰 도움이 됐구요. 하지만 또 하라고 하면 못해요. 다음 시즌에는 꼭 괜찮은 센터 뽑아주세요. ㅎㅎ
△위=솔직히 매 시즌 안 힘들었던 적이 없지만 올해는 정말 힘들었어. 특히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를 또 교체해야 했을 때는 ‘우승하지 말라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김=부친상 때문에 더 힘드셨죠?
△위=사실 아버지는 내가 농구를 시작하게 해주신 분이야. 자식 위해 늘 기도해주셨는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우승은 아버지의 선물 같아. 이번 기회에 (럭비 선수인) 남편 자랑 좀 해봐.
△김=남편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남편이 큰 힘이 됐어요.
△위=넌 확실히 우승 못해 본 티가 나더라. 골망 커팅할 때도 버벅대고. ㅋㅋ
△김=놀리지 마세요. 촌스럽다고 하실지 몰라도 우승 확정 1분 전부터 울컥하는 게 올라와서 힘들었어요. 아마 제가 한창 잘 나갈 때 이적해서 우승했다면 이 정도로 기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위=엠브이피(MVP)는 네가 받았지만 (임)영희나 (박)혜진이가 서운해하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래서 우리 팀이 잘 되는 것 같아.
△김=영희 언니나 혜진이가 받아야 할 상인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위=자, 우리 또 다음 시즌 우승을 위해 다시 시작해야지?
△김=영광의 순간은 짧고, 고통은 길다더니…, 감독님 그런 얘기는 우승 여행부터 좀 다녀와서 하시죠.
△위=그래 알았다. 우리 놀 땐 확실히 놀자. ㅎㅎ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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