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최초의 복싱 챔피언 잭 존슨. AP 연합뉴스
흑인 최초로 복싱 챔피언에 올랐지만 백인을 이겼다는 괘씸죄로 투옥됐던 잭 존슨(1878∼1946)이 죽은지 72년 만에 사면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한국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존슨의 사후 사면 문서에 서명했다.
이날 서명식에는 존슨의 유족을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면을 설득했던 영화 <록키>의 주인공 실베스터 스탤론, 현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세계 챔피언 디온테이 와일더, 전 헤비급 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은퇴) 등이 참석했다.
1878년 미국 텍사스주 갤버스턴에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존슨은 1908년 백인 챔피언을 캔버스에 눕히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당시 ‘흑인 챔피언’은 백인들에겐 치욕이었다. 존슨은 ‘위대한 백인의 희망’을 되찾으라는 사명을 띤 백인 선수들과 싸워야 했다.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제임스 제프리스까지 은퇴를 번복하고 링에 복귀해 1910년 존슨에게 도전했지만 15라운드 케이오(KO)로 졌다.
존슨은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했지만, 백인 폭도들은 존슨에게 열광하는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흑인 20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5일(한국시각) 잭 존슨의 사후 사면에 서명한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백인들은 존슨이 백인 여자들과 수차례 스캔들을 일으키다 심지어 백인 여자와 결혼까지 한 것에 공분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켠 백인들은 존슨이 1913년 전 애인이었던 백인 매춘부 여성에게 피츠버그에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줬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매춘부가 주 경계를 넘어 여행하는 것을 금지한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다.
존슨은 결국 전원이 백인 재판관으로 채워진 법정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옥살이를 피해 해외로 도피했지만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친 그는 1920년 미국으로 돌아와 10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말년에는 밤무대 가수로 떠돌다 1946년 68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트럼트 대통령은 존슨의 투옥생활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인종적인 이유에서 촉발된 부정의한 처벌로 본다”고 사면 이유를 밝혔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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