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홍보 포스터. 인스타그램 갈무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을 준비하던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팀 선수 5명이 대한체육회로부터 갑작스러운 ‘출전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들 중 4명은 현재 고등학생 신분으로 1학기 기말고사도 포기한 채 한 달 넘게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에 매진해 온 상황이었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스포츠 클라이밍 국가대표 피예나(16) 선수의 아버지 피우일씨는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통령님! 국가가 어린 선수들을 농락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피씨는 “5월5∼6일 열렸던 제38회 전국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19명(남자 10명, 여자 9명)이 6월4일 태릉선수촌에 입촌해 한 달 넘게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 5일 감독을 통해 대한체육회가 최종 출전인원을 줄여 선수 5명(남자 3명, 여자 2명)은 퇴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통보받았다”며 “대한체육회는 처음부터 출전인원이 남녀 선수 각 7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대한산악연맹은 ‘대한체육회의 일방적 결정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을 고등학교 1학년인 아이에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산악연맹 관계자는 “아시안게임 규정상 출전 가능한 인원은 20명이라 19명을 국가대표로 선발했고, 4월12일 체육회에 20명을 선발하겠다고 숫자엔트리를 제출했을 때만 해도 체육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회가 아시안게임 파견 선수 인원(14명)을 결정한 건 6월 이후”라고 해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출전을 할 수 없게 된 5명의 선수들에게 퇴촌을 통보한 적은 없다”며 “대회출전은 어렵게 됐지만, 다음 대회를 위한 기량을 쌓는다는 차원에서 선수촌에 남아 훈련할 것을 권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한체육회 쪽은 ‘아시안게임이 규정한 엔트리 숫자와 체육회가 국가대표로 선발하는 인원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아시안게임 자체 엔트리 인원만 놓고 보면 연맹 쪽 설명이 맞을 수도 있지만, 경기력향상위원회가 대회에 나갈 선수를 뽑을 때는 엔트리 숫자 뿐만이 아니라 선수의 경기력과 실적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며 “체육회가 지원하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가 지난해 1511명에서 올해 더 늘어났고, 이번 자카르타 대회는 4년 전 36종목이 열렸던 인천 아시안게임 때보다 4종목 많은 40종목이 치러지는 점도 종목당 선수 선발이 줄어든 이유”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체육회의 급작스러운 ‘파견 선수 축소’ 통보는 스포츠 클라이밍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 클라이밍과 같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신규종목’으로 등장한 주짓수 종목 또한 체육회의 발표로 혼란을 겪고 있다. 대한주짓수회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본래 국가대표 풀팀은 남녀 8체급 16명이지만,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파견 쿼터를 정하는 훈련기획부(경기력향상위원회)가 주짓수 파견 선수를 6명으로 한정했다”며 “선수파견 경비가 문제라면 협회 차원에서 모든 경비를 자부담 할테니 자비출전의 길이라도 열어 달라 청원했지만, 대한체육회는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변경하기 힘들다고 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체육회가 자비출전마저 제한하는 건 체육회 지원을 받지 않은 선수가 대회에서 메달을 따 체육훈장 등을 받게 될 경우 행정적인 문제가 복잡해질 것을 우려해서라는 게 체육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스포츠 클라이밍을 시작해 이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됐으나 출전 기회를 놓친 피예나 선수는 1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달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대회도 포기하고, 한 달 동안 학교에 못 가 기말고사 성적은 최저점수만 인정받게 됐는데 (대회에 나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되게 억울하고 속상했다”며 “어차피 아시안게임에 못 나가게 된 상황에서 선수촌에 있어봐야 마음만 힘들 것 같았다. 태릉에 남아있기 싫어 어제(12일) 퇴촌했다”고 말했다.
피 선수의 아버지인 피우일씨도 “어른들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다. 운동만 해 온 아이들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받고, 자신의 승패와 성적을 납득한다. 그런데 스포츠에서 이런 비상식적인 일로 아이들한테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태릉선수촌에는 아시안게임 출전 기회를 잃은 선수 5명 중 2명(남자 1명, 여자 1명)이 남아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