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박병훈(왼쪽)이 16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17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남자단체전에서 1번 선봉으로 나와 일본의 마에다 야스키의 허리를 강타하고 있다. 대한검도회 제공
“더 세게 때려야 하고, 더 정확해야 한다. 그런 압박감이 힘들다.”
16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17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남자단체전 준우승 뒤 한국대표팀의 맏형 이강호(40)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선수들과는 늘 결승에서 만나는데, 심판이 자꾸 신경 쓰이는 게 이중부담이라는 얘기다.
검도는 전기 센서로 점수를 매기는 펜싱과는 다르다. 죽도로 정수리, 손목, 목 중앙, 허리를 타격하면 점수를 따는데, 소리나 강도, 진퇴 동작 여부 등을 감안해 심판 3명이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머리에 정타를 먹여도 심판이 인정하지 않으면 무효다. 반대로 맞지 않았는데 맞았다고 하면 도리가 없다.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고, 비디오 리플레이로 확인하지도 않는다. 한국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업대회, 전국체전에서 비디오 리플레이 제도를 도입하고, 4심제와 5심제를 운영한다.
이번 세계대회는 42명의 심판 가운데 일본(12명)과 일본계 심판이 절반이 넘는 23명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홍콩, 브라질, 하와이에서 온 심판(11명)은 모두 일본인 성을 쓴다. 유럽 8개국 12명의 심판도 국제검도연맹(FIK)을 장악한 일본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의 강력한 주장으로 토너먼트부터 심판을 추첨해서 배정했지만 일본 편향은 여전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두 차례 이상 부당하게 점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억울하게 점수를 내줬다는 게 한국 검도인들의 생각이다. 대회 폐막식 뒤 우승한 일본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을 찾아와 위로하는 외국 선수들이 있었다. 박경옥 남자팀 감독은 “우승과 준우승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기자도 ‘부끄럽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우승을 해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검도는 두툼한 죽검과 경쾌한 타격 소리로 펜싱과는 또 다른 묘미와 박진감을 준다. 하지만 한-일전에서는 늘 편파 판정 논란이 나온다. 기술 발달로 잘못된 판정은 유튜브에서 금세 확인되고, 국제검도연맹의 권위와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검도연맹이 심판 존중의 전통을 고수하더라도 최소한 판정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한국이 주장해온 비디오 판독 시스템 도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 일본 검도계도 좀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3년마다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되풀이되는 한국 선수들의 피해의식은 세계 검도 발전에 마이너스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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