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실업팀은 787개로 국내 전체 실업팀(977개)의 80.55%에 이른다. 사진은 지난해 1월 수원시청 여자아이스하키팀 창단 발표식 장면.(사진은 본문의 특정 사실과 무관함) 수원시청 제공
“참 걱정이다. 체육계가 정치판이 될 것 같다.”
체육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취지와 반대로 체육계의 갈등과 혼란을 불러온다면 어떨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가 주도해 만든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금지법(국민체육진흥법 43조 2항 신설)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지난 1월15일 통과된 법이 내년 1월16일부터 발효되기 때문에 그 전에 17개 시·도 체육회와 228개 시·군·구 체육회의 회장을 일제히 새로 뽑아야 한다.
한 지방체육회 사무처장은 “단체장과 정당이 다르거나 장차 정치적 경쟁자가 체육회장이 되면 난감할 것 같다. 서로 협력하면 좋겠지만 갈등하게 되면 기존의 체육 예산과 실업팀 운영, 지방체육회 직원의 신분까지 큰 변화가 올 것 같다”고 불안해 했다.
한국 엘리트 체육에서 지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대한체육회가 집계한 2017년 17개 시·도체육회 예산(5172억원)과 228개 시·군·구 체육회 예산(4896억원)은 거의 1조원에 이른다. 이들 지방체육회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실업팀은 모두 787개로 국내 전체 실업팀(977개)의 80.55%다. 대개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이 많다. 정부가 대한체육회에 연간 3500억원 안팎을 지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를 지탱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수십년간 재정의 3분의 2 이상을 떠맡아왔다고 볼 수 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법 개정 과정에서 “단체장이 체육회장을 맡지 않고 민간회장이 선출될 경우 예산 확보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법사위 전문위원이나 행정안전부쪽에서도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 제정 이래 지자체 단체장은 당연직 체육회장을 맡아 한국 엘리트 체육의 토대를 닦아온 게 사실이다.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대한체육회는 실무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회장도 지방체육회를 돌면서 회장 선출 방식과 규정, 체육회 법인화와 예산 확보 방안 등을 설명하고 현장의 의견을 들었다. 대한체육회는 대체적으로 지자체장과 동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단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금지법 시행을 2022년으로 3년 유예할 것과 안정적 지방체육예산을 위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밝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는 체육의 독립과 자율성을 지키고, 정치에 동원되지 않도록 한다는 명분으로 지자체 단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금지 법안을 만들었다. 국회의원은 일절 체육단체장을 맡지 못하도록 국회법에 명시돼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자치단체장이 체육회 감투를 쓰지 못하도록 한 셈이다.
하지만 면밀한 검토나 대안 없이 법 개정을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체육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체육회장 선거가 체육인들의 분열이나 갈등을 초래할 여지도 있다. 지방 체육회의 지원을 받는 787개 실업팀의 지도자와 선수 등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체육회 소속 한 경기단체 사무처장은 “올해 말에는 대한체육회 소속의 50여개 가맹단체 회장 선거도 이뤄진다. 선거인단의 규모가 매우 클 것이다. 지방 체육회장 선거까지 겹쳐 체육판에 엄청난 정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