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국가대표로 키워 감독맡고 싶다”
용인시청 여자핸드볼팀은 ‘외인 부대’다. 14명 중 절반인 7명이 은퇴했다가 2~3년 만에 다시 코트로 돌아온 선수들이다. 우리 나이로 서른 셋인 최고참 백창숙은 두 아이의 엄마다. 골키퍼 김정예(30)도 지난해 아기를 낳은 뒤 코트로 돌아왔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신인 5명을 빼면 현역으로 뛰던 선수는 단 2명에 불과하다.
이런 팀을 만든 주역은 핸드볼계의 ‘풍운아’로 불리는 김운학(43·?5c 사진) 감독이다. 그는 지난해 초, 이정문 용인시장이 핸드볼팀을 만들기로 결심을 밝히자, 선수 확보에 나섰다. 이 선수 저 선수를 찾아다니며 “제발 좀 뛰어달라”고 통사정했다. 지난해 3월 어렵게 팀을 창단했지만 훈련 장소가 없었다. 승합차를 빌려 구리 청주 진천 등을 전전하며 훈련한 끝에 4개월 만에 첫 출전한 태백산기 대회에 나섰다. 그리고 국가대표가 즐비한 최강 대구시청에 3골 차로 아깝게 졌다. 전반은 되레 3골을 이겨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두번째 대회인 10월 전국체전에서는 1회전에서 삼척시청에 완패했다. 선수가 모자라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골키퍼 김정예가 공격수로 나서기까지 했다.
‘오합지졸’ 조련해 핸드볼 큰잔치 6강 ‘사고’
보름간 뻗치기 유망신인 데려온 ‘공인 독종’ 김 감독은 가장 큰 대회로 1월에 열리는 핸드볼 큰잔치를 앞두고 절치부심했다. 신인 최대어인 권근혜(19·황지정보고)를 잡기 위해 그의 고향인 태백에 여관방을 잡았다. 권근혜의 아버지에게 “안 주면 안가겠다”고 보름간이나 버티고 사비를 털어 스카우트비를 준 끝에 그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5일 드디어 ‘대형 사고’를 쳤다. 2005~2006 대한항공배 핸드볼큰잔치에서 강태구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부산시설관리공단을 5골 차로 꺾은 것이다. 소식을 접한 이 시장이 깜짝 놀라 김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김 감독이 ‘사고’를 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88년 스물 여섯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인화여중과 휘경여중 등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상은과 김향기 장소희 이민희 등 전·현 국가대표가 그의 조련을 받고 탄생한 스타들이다. 2000년에는 신생팀 수지고를 맡아 2년간 전국대회 전관왕에 23연승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선수시절 1m72의 크지 않은 키에도 양손잡이 오른쪽 날개로 코트를 누볐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는 달지 못했다. 그의 별명은 ‘독사’다. 그만큼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한다. 오후 3시부터 이틑날 새벽 2시까지 훈련시킨 적도 있다. 그는 “내가 가르치는 선수들만큼은 국가대표를 만들고 싶었다”며 훈련 배경을 설명했다. “핸드볼에 미쳐 운전면허 딸 시간도 없었다”는 그는 “지도자로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며 국가대표 감독의 꿈을 펼쳐보였다. 글·사진 삼척/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보름간 뻗치기 유망신인 데려온 ‘공인 독종’ 김 감독은 가장 큰 대회로 1월에 열리는 핸드볼 큰잔치를 앞두고 절치부심했다. 신인 최대어인 권근혜(19·황지정보고)를 잡기 위해 그의 고향인 태백에 여관방을 잡았다. 권근혜의 아버지에게 “안 주면 안가겠다”고 보름간이나 버티고 사비를 털어 스카우트비를 준 끝에 그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5일 드디어 ‘대형 사고’를 쳤다. 2005~2006 대한항공배 핸드볼큰잔치에서 강태구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부산시설관리공단을 5골 차로 꺾은 것이다. 소식을 접한 이 시장이 깜짝 놀라 김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김 감독이 ‘사고’를 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88년 스물 여섯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인화여중과 휘경여중 등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상은과 김향기 장소희 이민희 등 전·현 국가대표가 그의 조련을 받고 탄생한 스타들이다. 2000년에는 신생팀 수지고를 맡아 2년간 전국대회 전관왕에 23연승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선수시절 1m72의 크지 않은 키에도 양손잡이 오른쪽 날개로 코트를 누볐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는 달지 못했다. 그의 별명은 ‘독사’다. 그만큼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한다. 오후 3시부터 이틑날 새벽 2시까지 훈련시킨 적도 있다. 그는 “내가 가르치는 선수들만큼은 국가대표를 만들고 싶었다”며 훈련 배경을 설명했다. “핸드볼에 미쳐 운전면허 딸 시간도 없었다”는 그는 “지도자로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며 국가대표 감독의 꿈을 펼쳐보였다. 글·사진 삼척/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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