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이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8회초에 등판해 5점을 내준 뒤 강판 당하며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요코하마/연합뉴스
‘끝판 대장’이 무너졌다. 한국 야구도 무너졌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7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오승환(삼성)이 8회초 와르르 무너지면서 6-10으로 졌다. 2-5로 끌려가던 경기를 5회말 강백호(KT)의 적시타로 뒤집어 7회까지 6-5로 앞서갔던 터라 패배가 더욱 뼈아팠다.
이로써 2008 베이징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썼던 한국 야구는 13년 만에 열린 올림픽 야구에서 ‘빈손’이 됐다. 세대교체 기류 속에서 야구 대표팀 역사상 가장 약한 전력이라는 우려가 객관적 현실로 드러난 셈. 6개국이 참가한 이번 대회 대표팀 최종 성적은 3승4패다. 3승은 이스라엘에 두 차례, 도미니카공화국에 한 차례 승리하며 얻었다. 일본(1차례), 미국(2차례)과 대결에서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복잡한 대회 규정상 여러 차례 메달 획득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이 경기 후반에 무너졌다.
‘김경문호’는 출항부터 힘들었다.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이었으나 야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여느 때보다 곱지 못했다. 전반기 막판 터진 일부 구단들의 원정 숙소 술자리 파문과 리그 중단에 따른 후폭풍이 엄청났다. 더군다나 현재 성적이 아닌 경험 위주로 대표팀을 꾸리면서 여러 잡음까지 일었다. 김경문호는 올림픽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표팀 엔트리에도 변화가 왔다. 주전 2루수로 발탁된 박민우(NC)와 스윙맨 역할이 기대된 한현희(키움)가 원정 술자리 파문으로 훈련소집을 코앞에 두고 낙마했다. 김경문 감독은 투수력 보완을 위해 김진욱(롯데), 오승환을 대신 뽑았다.
이번 대표팀 투수진 11명 중 7명은 국제무대 경험이 전혀 없었다. 소속팀에서 대부분 선발로 활약했던 터라 뒷문이 헐거운 측면도 없지 않았다. 결승 진출 갈림길이던 미국전에서 6회말 원태인(삼성)이 흔들린 것도 불펜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7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6회초 2사 1·2루 상황에서 도미니카 훌리오 로드리게스가 배트를 휘두르다 공이 손에 맞아 심판이 몸에맞는공으로 진루를 선언하자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요코하마/연합뉴스
전문 불펜 투수가 부족해 그나마 믿을 만했던 조상우(키움)를 계속 기용하다가 탈이 나기도 했다. 조상우는 이번 대회 7경기에서 6차례 등판하는 강행군을 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외나무다리 싸움에서는 고우석이 2⅓이닝을, 조상우가 2이닝을 책임져야 했다. 오승환에게 남은 2이닝을 맡길 요량이었으나 지친 오승환은 볼끝에 힘이 없어 4안타(1홈런)를 두들겨 맞고 대량 실점을 했다.
투수 리드는 물론 공격에서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됐던 안방마님 양의지(NC)가 팀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15일간 자가격리되면서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진 것도 결과적으로 악재가 됐다. 양의지는 일본전에서 4타수 4삼진을 당했다. 양의지 대신 ‘캡틴’ 김현수(LG)가 분전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김현수는 경기 뒤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나름대로 수확은 있었다. 세대교체 중인 대표팀 투수진의 경험이 쌓인 것이다. 이의리(KIA), 김진욱, 박세웅(이상 롯데) 등은 미국, 일본, 도미니카공화국, 이스라엘과 경기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국제무대 경험은 메달보다 더 소중한 한국 야구 미래 자산이 됐다.
한편,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은 내년 9월 열린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정운찬 전임 총재 시절 아시안게임 때는 KBO리그 정규리그 중단을 하지 않기로 한 터라 1.5군 정도로 대표팀이 구성될 전망이다. 이번 대표팀 선수 중에서는 조상우, 강백호, 이의리, 김진욱, 박세웅, 원태인, 김혜성(키움) 등 7명이 군 미필이었다. 2024 파리올림픽 때는 야구가 정식종목에서 제외됐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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