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컨트리 한국 국가대표 이채원(41). 대한체육회 제공
‘크로스컨트리’라는 낯선 종목 이름을 세 글자 한국말로 줄이면 ‘이채원’이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태극마크를 단 이래 쉼 없이 눈밭을 달려온 이채원(41·평창군청). 그의 여정은 그대로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역사가 됐다. 그는 1996년부터 2020년까지 전국 동계체육대회 금메달만 78개를 쓸어담았고 28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한국 정상에 있다. 4년 전 고향 평창에서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지만 주변의 설득에 다시 설원으로 불려나왔다. 지난해 12월 이채원은 크로스컨트리 여자 프리와 클래식 통합 1위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돌아온 전설에게 베이징은 6번째 올림픽이다. 빙상의 이규혁, 스키의 최서우, 최흥철, 김현기와 더불어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이다. “열심히 달려와 보니 6번째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힌 이채원의 목표는 30위권이다. 그는 앞서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서 30㎞ 프리 33위를 기록해 한국 크로스컨트리 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을 냈다. 2017년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최종 12위로 한국 최고 순위를 기록했지만 정작 평창겨울올림픽 때는 15㎞ 스키애슬론 57위, 10㎞ 프리 51위로 부진했다. 이때의 아쉬움으로 스키를 차마 놓지 못했다.
크로스컨트리는 스키로 노지를 가로지르는 운동이다. 통상적으로 스키 경기라 하면 시속 100㎞를 넘나들며 하얀 슬로프를 짧은 시간 내에 활강하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크로스컨트리는 긴 시간 동안 스키를 신고 발뒤꿈치를 들썩이며 하얀 눈밭을 밟고 달리고 또 달린다. ‘설원 위의 마라톤’이라는 수식은 직유다. 코스는 내리막뿐 아니라 평지와 오르막으로 구성된다. 선수들은 한 번에 10∼30㎞를 뛴다.
이채원이 선수 생활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2011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겨울아시안게임 10㎞ 프리 경기 마지막 장면을 보면,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이채원은 방전된 듯 옆으로 쓰러진다. 평생 스키를 탄 베테랑은 크로스컨트리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 운동 정말 못할 짓이다’ 생각 많이 하게 돼요.” 이날 마지막 5㎞에 인생을 걸었던 그는 한국 여자 크로스컨트리 사상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키 불모지에서 이채원은 크로스컨트리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2013년에는 임신 9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숨기고 훈련을 하고 이듬해 출산 후에도 두 달 만에 훈련을 개시했다. 딸 장은서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평창이 마지막인 줄로만 알았는데 또다시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돼 투정을 부렸다는 딸은 지난달 25일 열린 선수단 결단식에서 “엄마가 무척 자랑스럽다. 응원하겠다”는 깜짝 음성 응원을 보냈다.
한국 크로스컨트리팀 임의규 감독보다 3살이 많은 그에게 베이징 대회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공산이 크다. 마지막 결승점을 향한 이채원의 질주는 5일 오후 4시45분(한국시각 기준) 허베이성 장자커우 국립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시작된다. 클래식과 프리스타일 주법을 절반씩 구사해야 하는 7.5㎞+7.5㎞ 스키애슬론 경기다. 프리스타일 주법이 특기인 이채원에게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다. 이의진(21), 한다솜(28·이상 경기도청)이 함께 출전한다. 이를 시작으로 이채원은 이번 대회 동안 4번 스키를 탄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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